봄
눈 부신 아침, 학교에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일어난 그 때에는 설렘만이 가득했다. 창 밖으로 들리는 새 소리와 맛있는 냄새, 날 깨우러 오시는 아주머니까지 모든게 완벽했다.
“도련님 일어나셔요- 밥 먹고 학교 가셔야죠.”
이제 막 스무살이 되어 처음으로 대학을 가는 날,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인 것 만 같아 원래 이렇게 변하는 게 없는건가 싶은 마음으로 일층으로 내려 갔다.
“오 막내~ 오늘 학교 처음 가는 날이지?”
“응”
“기분이 어때? 이제 진짜 성인인데”
“잘 모르겠어”
“밥들 먹어라”
늘 그렇듯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두 형들과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나. 그런 나의 태도에 형들은 늘 서운해 하지만, 내 성격이 다정하지 못한걸 어쩌겠나 싶을 뿐이었다.
“다녀오세요. 아빠”
“그래. 우리 막내도 학교 잘 갔다오렴”
“네”
식사를 마치고 아침 일찍부터 회사로 나서는 아빠께 인사를 드리고는 방으로 다시 올라온 나는 어제 미리 정해둔 옷을 입고 학교로 나서려는 참이었다.
“데려다 드릴까요?”
기사님의 말에 고민하다 고개를 저으며 “아뇨. 오늘은 첫날이니까.. 걸어가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기사님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며 학교가 끝나면 전화만 해달라고 부탁하셨고, 알았다고 대답한 나는 학교로 출발했다.
학교로 걸어가는 길은 꽤나 즐거웠다. 봄이라 그런 듯 벚꽃도 만개했으며, 길 거리를 돌아다니는 참새들과 저 멀리 보이는 엄청난 캠퍼스에 가는 내내 즐거 웠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수인대학교로 일반 사람들은 입학 할 수 없는 학교이다. 그래서인지 마음껏 혼현을 드러내고 다니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사실 나는 모임에 잘 가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많이 없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전체적으로 다 친하다고 하셨다. 그래도 나름 첫 등교라고 조금 설렜던 것 같다.
-
수업이 끝나고 동아리를 정하고 싶어서 둘러보다 무용동아리가 눈에 띄었다. 중고등학교 때가 생각나 괜히 울적해지는 기분에 얼른 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옆에 있던 독서 동아리를 택했다.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 편이라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면접일자를 받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오늘 나한테 친해지고 싶다고 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_지민아 나 태형이! 너 뭐하고 있었어?
꽤 귀엽게 생겼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말투도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_나 이제 집에 왔어.
_너 혹시 동아리 뭐 들었는지 물어봐도 돼?
타자를 꽤나 빨리 치는지 답장을 보낸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질문을 했다.
_도서부
간단하게 답을 보내고 쉬고 있는데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는지 밑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
밥을 먹고 올라와 씻고 잠에 들었는데, 어느새 아침이다. 왠지 모르게 컨디션 이 좋지 않은 몸을 이끌로 학교에 갈 준비를 마쳤다. 거실로 내려가니 기사님이 나에게 태워다드릴까요? 라며 물어왔고 오늘만 부 탁하겠다며 차에 탔다. 그리고, 학교에 도착하자 태형이가 나를 부르며 달려 왔다.
“지민아!!”
“안녕”
우렁찬 소리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것만 같았지만 귀엽게 느껴지는 태형이의 행동에 푸스스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지민아, 너 어디 아파? 괜찮은거야?”
“응?”
그러나 아프냐고 물어오는 태형이에 당황스러웠지만 괜찮다고 하고는 수업을 들으러 향했다.
-
강의실에 들어가니 모르는 선배가 앞에 서 계셨고 옆에 앉아있던 태형이가 ‘저 선배가 도서부 부장이야. 민윤기. 음.. 아마 우리 과대일걸?’이라며 선배의 정 체에 대해 귀띔해주었고, 나는 호기심에 선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선배와 눈이 마주쳤고, 그 선배는 나를 보며 슬며시 웃어 보이셨다.
“잘생겼다..”
“응?”
“어?”
“너 설마.. 너도 저 선배한테 반한거야?”
“어.. 그런가”
“.. 근데 지민아,”
“응..?”
“꿈 깨는게 좋을거야”
“뭐?”
갑자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태형에 왜냐고 물으니 태형은 이렇게 답했다.
“저 선배 좋아하는 사람 한둘이 아니야. 내가 아는 형도 몇 번 까였대. 저 형 팬클럽도 있다던데? 남녀 불문하고 우리 학교에서 저 선배 안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래. 근데 그 사이에서 네가 눈에 띌 리가 없잖아..”
“.... 근데 좀 기분 나쁘다? 눈에 띌 수도 있지”
“우리 학교 연예인들도 많이 다니는데 아직도 솔로인걸 보면... 가능성 없어. 하긴, 솔로가 아닐수도 있지. 흑호 수인이 우리나라에서 흔하냐. 누군가 이미 채간걸수도”
“..흑호 수인?”
“뭐야. 몰랐어? 저 선배 흑호 수인이야. 음.. 내 육촌쯤? 근데 한번도 가족모 임에선 본적 없어. 그러다 보니 형이라고 못부르겠어서 그냥 선배라고 부르기로 했고”
“아..”
“그러고 보니까 우리 서로 무슨 수인인지도 몰랐네. 난 백호야. 엄마는 흑호고, 아빠가 백호. 너는?”
“아.. 나는...”
태형이가 내 정체를 묻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얘도 날 버리면 어떡하지’라 는 생각이 내 정신세계를 집어 삼키는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나를 달래보려 애 썼지만 별 효과는 없는 것 같았다. 태형이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왔지만 그게 정말 나를 부르고 있는지조차 인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국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눈을 뜨니 새하얀 천장과 함께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울고 있는 태형이었다.
“왜 울어..”
입을 열고 들린 내 목소리는 가관이었다. 다 갈라져서는 뭐라고 하는지조차 알 아들을수 없을것만 같은 목소리. 그래도 태형이는 용케 알아들었는지 내게 대답했다.
“나는, 나 때문,에 너 잘, 못된, 줄 알고, 흐어엉”
“나 오래 누워있었어?”
“응, 한 이틀?”
“악!! ... 선배가 왜 여기 계세요?”
“너 내가 업고 왔는데”
헐. 윤기선배다. 태형이가 너무 서럽게 울길래 이번에도 길게 누워있었나 싶어서 했던 질문에 엉뚱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고개를 돌렸더니 보이는건 윤기선 배였다. 아니 근데 그것보다 윤기선배가 날 병원까지 업고 왔다는게 더 놀라웠다.
“근데 무슨일 있었어? 자는 내내 식은땀도 엄청 흘리고, 많이 걱정했어. 안좋은 일일까봐. 김태형이 너 죽으면 안된다고 얼마나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지”
“아.... 별일 아니에요. 조금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별거 아니긴!!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놀랐는데...”
“미안....”
-
“그래서 무슨 일이었는데?”
“별거 아니라니까요..”
이 선배 꽤나 끈질기다. 벌써 삼일째,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그 날부터 무슨일이었냐고 물어온다. 날 보면 인사보다 저걸 먼저 묻는 것 같아..
“별거 아닌데 쓰러질 리가 없잖아”
“아니 근데 선배 왜 저한테 이렇게 신경을 많이 쓰세요? ..물론 그게 싫다는건 아니지만..”
“싫은거 아니면 이야기 해줘”
“그냥 태형이가 물어본거였어요. 저 무슨 수인이냐고”
“그니까.. 그 얘기도 백번은 더 들었어. 왜 쓰러졌냐니까?”
“안좋은 기억이 떠올라서라고 말슴 드렸잖아요..”
“지민아. 나는 네가 나한테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무슨일 때문에, 어떤 안좋은 일이 있었길래 그런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벌벌 떠는건지 정말 궁 금해서 그래”
“... 말해주면, 어떡할건데요. 이야기 해주면 떠날거잖아요.”
“내가 너를? 왜?”
“네?”
“내가 왜 너를 떠날거라고 생각하냐고”
“그야 당연히.. 제가 여우니까요.”
“네가 여우인거랑 무슨 상관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 너 좋아해”
선배가 날 좋아한다니. 이건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혹여 나를 좋아했다고 하 더라도 이제는 아닐 것이다. 내가 여우인걸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 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중학교 때에는 모두가 나를 떠났고, 고등학교 때는 여 우라서 선생님을 홀린거라고, 그래서 수석인 거라고 조롱받기 일수였다. 여태 나를 좋아해준 사람은 가족 뿐이었다. 아무일 없다고 이야기 하고 다녔지만, 그렇지 않았다. 혼자 힘들어한 시간은 셀 수도 없었다.
“그럴리 없어요. 선배가 왜 나 같은 걸 좋아해요..”
“너 같은게 뭔데”
“네?”
“너 같은 게 뭐냐고. 누가 너한테 여우라서 싫다고 한적 있어?”
“... 모두가 그랬는걸요. 저 같은 여우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된대요. 난.... 누구를 홀려 본적도, 누구랑 몸을 섞은적도 없는데, 자꾸 난 여우니까 그랬을 거래요. 한번도 그런적이 없는데 진짜 내가 한적이 있나 싶어요”
“그랬구나.. 그래도 난 아니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태형이도 마찬가지일거고. 여우면 어때. 네가 한적이 없으면, 그걸로 된거지. 네가 떳떳하면, 굳 이 그런 사람들의 말에 일일이 상처 받을 필요 없어.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
남들이 들으면 별거 아닌 말이겠지만, 눈물이 났다. 사실이 아님에도 자꾸만 사실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말 한마디,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5년을 살아왔다. 친한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에도 들어본적 없는 말이었다.
“고마워요.. 진짜로”
“별말 아닌걸.. 근데, 내 고백은?”
“네?”
“나 지금 차인거야? ...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묻힌다고? 나 고백 처음해보는데”
“아.... 저도 선배 좋아해요”
내 말 한마디에 선배는 뭐가 그리 웃긴지 계속 웃으셨다. 그러더니 하는말이..
“너 진짜 너무 귀엽다”
였다. 내 얼굴은 어디까지 빨개진건지 알수 없을정도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