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짐대학교 천문학과 레몸 2118012
<아귀>-레몸
그 애가 주로 가지고 노는 것은 ISS( 국제 우주 정거장, International Space Station) 의 철제 구조물 모형이었다. 단단한 그 조형물은, 실제 함선의 표층부 재질로 이루어져 불에도 타지 않는다고 했다. 여느 박람회에 방문 기념으로 쥐여 주는 싸구려 피규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퀄리티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끄트머리에는 열쇠고리 형식으로 고리가 있었고, 태양 전지판에 해당하는 얇은 판막은 좌우로 비틀어 이동할 수 있어 어린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좋을, 딱 그 정도.
고운 손결 사이로 벌써 일곱 번째 회전을 반복하는 우주 정거장의 모형은, 이제는 손때가 타서는 끄트머리가 거뭇하게 변했다. 최초의 우주 정거장은 지금 달에 자리한 것처럼 유선형의 곡선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민윤기가 거취하고 있는 화성 스테이션에 비하면 더없이 투박한 형태였다. 덕분에 거슬하고 각진 표면이 조형물을 꾹 움켜쥘 때마다 살갗을 파고들었다. 지민은 그것을 어딘가에 빼두고 다닌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처음으로 품었던 희망만큼이나- 그가 이곳에 와있는 목적의 팔 할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연설하던 그 남자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윙윙 울린다. 그의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계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지만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문의 일면을 채우던 반들반들하고 기름진 이마와, 노아 사일러스라는- 어울리지 않게 따스했던 이름을.
이제 와서는 듣기만 해도 헛구역질이 올라오는 그 이름이, 지금 그가 몸을 담고 있는 화성 스테이션의 입구 상단부에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다.
"언제까지 머물 생각이야."
"모르지.“
잿더미의 냄새가 난다. 화기가 가까이 다가오다가, 손길 끄트머리에 들려있는 담뱃대 위에 달라붙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논문자료가 도리어 재앙처럼 보였다.
"돌아갈 곳이 있긴 해?"
"....."
"나한테는 이제 없어.“
이 담배 맛도 질릴대로 질렸다. 아무리 사치품이라고 해도 그렇지, 온통 똑같은 종류만 늘어놓을 줄이야. 인상을 찌푸리다 재떨이 위로 털어내고 만다. 돛대였는데, 정말 드럽게 맛이 없다. 화성 땅 위에 조성된 거대한 스테이션은 지구의 대기와 비슷한 원형 통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최대한 많은 인간을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로, 중앙점을 기준으로 온 사방으로 중력이 작용한다. 그 안에 비행 대학과 일반인 거주지가 존재했다.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인공 태양이 비추는 작은 건물 내부. 우주복을 입으면 화성의 토양을 걸을 수는 있지만- 그뿐이다. 안전지대가 아니기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것은 소수의 인원만 허용된다. 비행대학 연구팀이나, 건설업자들 정도. 붉은 대지 위로 연구 센터가 신축되고 있었다. 화성의 대기 폭풍에도 날아가지 않기 위해 단단한 소재로 작업 중이라고 했지만- 그곳에 방문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는다.
마치 사막 같은, 그저 붉고 뜨거운 토양 위를 멀찍이서 지켜본다. 시간이 미친듯이 빠르게 흘렀다.
어린 시절의 민윤기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가 품은 열정과 희망의 팔할은 그의 곁에 있던 박지민 에게서 옮은 것이었다. 아니, 박지민이 모든 열정의 이유이기도 했다. 함선의 조종간을 잡는 일은 국가적 영예였다. 그 때는 단순히 그 일이 ' 탐험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세대에서 의대생 법대생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좋은 머리와 실력을 겸비한 자에게 내려지는 그런 '지위' 쯤 이라고. 윤기의 경우는 아무래도 좋지 못한 집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기도 했다. 성적이 좋아 함선 조종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면 그 집안의 직계 가족에게 포상금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그 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기이한 망상증에 빠져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상황이 반전된 것은, 노아 사일러스의 우주 함선이 탄생한지 몇 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90퍼센트 치사율의 감염병이었다. 농작물에 감염이 퍼져 식량난으로 번졌고, 사람들이 길 위에서 쓰러졌다. 단순히 병원으로 이송되는 와중에 생명을 잃는 사람도 많았고, 병동 시스템도 무너졌다. 전쟁보다도 감염병의 파급력이 컸다. 일찌감치 병균을 피해 방공호까지 숨어들어간 사람도 꽤 된다.
인간은 아무래도 사회적 동물이다. 장기적인 히키코모리 라이프는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쳤다. 감염병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터져 나온 관계적 질병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가서는 폭동을 일으키거나,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반정부 시위를 하거나- 틈을 타서 돈을 빼돌리고 잠적하는 이들도 많았고- 그런 풍경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고향에서 지내던 이들은 병에 대처하지 못해 북부 지방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고작 몇 주 만에, 양친과 동생, 모두를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곳- 노아 사일러 스 화성 스테이션에서. 함선 조종간을 잡을 것이라는 희망이, 이제는 돌아갈 곳이 없는 벼랑 끝의 소년에게 남은 마지막 한 줄기 기회였다.
<아귀>
레몸
스테이션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늘 그렇듯 붉고도 뜨겁다. 얄팍한 대기층은 태양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다. 모래로 가득한 표면은 점점 뜨겁게 달궈지고, 마치 사막처럼- 금방 기온이 타고 오른다. 그러다 야간이 되어 대기층이 태양의 반대편에 서면 금방 식어 내리는 기온 탓에 우주복이 없다면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지도 모를 상황이 되곤 한다.
빠득이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려 퍼졌다. 연구동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우주복을 착용해야 했다. 헤드까지 착용해야하기 때문에 공기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기어를 조정해야하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소음이었다. 분교 캠퍼스의 구조는 결코 사람 에게 맞춰진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건설과정에서의 편의성을 위해서 고안되었다. 우주 환경에서의 건축물은 재료 조달부터 큰일 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기후 특성상 가볍게 지어놓은 건축물은 모래폭풍에 쉬이 쓸려 내려가곤 했다. 원래 인간이 지내던 곳의 편의성을 바라기에는- 집에서 너무 멀리 떠나왔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이런 뜻인가 얼추 실감하기도 한다.
1층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면, 진동과 함께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곁에 서 있는 허여멀건한 우주복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등판에 적힌 NOA 기호와, 작게 적힌 박지민이라는 모국어의 조합이 괴리감이 느껴진다. 너무 붉지 않아?
과묵하다 못해 터질 것 같은 공기 속에서 문득 무전기의 잡음이 들려왔다. 한참을 네 등판을 보고 있었는데, 네 시선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우리 땅도 곧 이렇게 변할 걸."
암울한 소리뿐이다. 학자들의 대다수가 인류의 종말을 예고했다. 현재 지구에는 희망이 없다고, 그렇게 말한다. 한낱 학부생인 두 사람도 얼핏 예측하고 있었다. 그나마 지구 밖에 나와 있는 몇몇의 인원에게 희망이 쏠렸지만- 그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했다. 지구 종말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역시 98퍼센트의 확률로 인류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물어가는 인간사를 목전에 둔 소수의 인원들은 대부분 기가 빨린 상태였다. 그건 민윤기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 모든 시나리오에 2퍼센트의 가능성을 믿겠다는 비정상적 이상주의자가 박지민 이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늘 그랬듯이, 그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실현화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모르지."
"갈 수 있을지도 몰라."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박지민은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민윤기는 종종- 현실을 바라보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한때는, 네 눈에 반짝이던 그 이상을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다란 속눈썹에, 조금 도톰한 눈두덩이를 뜨면 모든 성공을 목전에 둔 것처럼 그 안의 눈이 반짝이곤 했다. 다만 그것을 사랑하기에 - 이제는 목전에 닥친 현실이 너무도 지독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지구로 돌아가 모두를 데리고 오자.
도톰한 입술 너머에서는 잘도 그런 말이 나왔다.
...잡역부 일을 하던 양친은 낮 동안에는 보기 힘들었다. 덕분에 민윤기의 유년시절은 마을 언저리를 떠돌며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허름하고 낡아빠진 동네의 뒷터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설치되지 못했던 안드로이드 제조 공장건물이 밀려나와 이 지역에 설치되었다가, 이제는 가동이 끊어져 폐건물이 되었다. 오전이 되면 폐공장 잔해에 녹슨 쇳물이 이슬과 함께 뚝뚝 떨어져 내렸다.
쇳물이 떨어진 땅은 그 일대 주변의 생명을 쥐 잡듯이 눌러 죽였다. 비라도 내릴라 치면- 초원 사이로 불그스름한 웅덩이가 생겨나 그 풍경이 참 기이하게만 보였다.
그 때부터 녹슬어 붉게 물듯 것을 어지간히 싫어했던 것 같다. 산화된 철조각 사이로는 일자리를 잃은 마을 사람들은 종종 찾아들어가곤 했다. 공장 건물에서 뭐 조금이라도 생활에 득이 될 것을 주워오려는 것이었는데- 대다수는 실패했다. 공장 업자도 살기 곤란해 폐업했던지 그 안에 있던 물건은 모조리 쓸어갔더랬다. 덕분에 남은 것이 보기 흉한 쇳덩이 밖에 없다고- 종종 그렇게들 중얼거렸다.
어린 날에는 그 어두컴컴한 속내가 어지간히 궁금했던 것 같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멋들어지고 커다랗던 건물이 어쩌다 한순간에 이렇게 망가진 잔해가 되었을 까. 전기가 끊어진데다 망가진 철제 틈이라 빛 한 점이 새어들지 않는 어두운 내부가 입을 떡 벌려낸 아귀마냥 사람들을 끌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나오는 이들은 하나같이 녹물을 뒤집어쓰고는 몸을 부르르 떨며 튀어나왔다. 텅빈 손으로 들어갔다가 뭐라도 잡았던지 한주먹을 쥐고 나왔는데- 어두컴컴하니 닥치는 대로 주워왔다가 이내 그것이 쓸모없는 물건이었음을 깨닫고 도로 던져 넣곤 말았다.
어른들이 잔해가 위험하니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 했던 데다, 이유 모를 공포스러운 분위기 탓에 사실은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들어갔다가 죽을 뻔 했다며 울고 나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며칠씩 나오지 않다가 안에서 굶어죽은 잔해가 되는 이들도 있었다. 동네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 한 것이 그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그곳을 종종 아귀굴 이라고 불렀다. 배고픈 귀신이 똬리를 틀고 앉아 사람을 하나 둘 잡아먹는다고- 동양계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라 그런지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랬기에 윤기도 그 안 에 들어설 생각이 없었다. 다만- 그 안에 기어코 발을 들인 것은, 그 안에서 보았던 어떤 눈 때문이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에서 어른도 아니고, 들짐승도 아닌 번뜩이는 눈빛이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한 푼 쥐고 나올 수 있을까 싶어 기를 쓰고 웅크린 채 들어갔던 어른이었다면 덩치가 더 컸을 것이고, 초원을 떠도는 늑대나 여우같은 짐승이었다면 이 근방에는 워낙 먹을 것이 없으니 비쩍 말라야 정상이다. 그건 소년이었다. 여태 마을에 살면서 얼굴 한 번 마주한 적이 없는 작은 체구의 소년.
끼익끼익- 기괴한 소리를 내는 철제 구조물을 헤치고 들어간 것은 고작 그 눈빛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 진짜로 아귀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틈새로 녹물을 잔뜩 뒤집어쓰며 헤치고 들어갔을 때 덜컥 팔을 붙잡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작달막한 소년이 그 곳에 숨어 사는 것이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망울은 영양실조로 푹 꺼져 있었고, 팔이며 다리며 살 한점 붙은 곳이 없이 말랐다. 금방이라도 자빠져 죽을 것 같은 소년이 민윤기를 풀썩 끌어당겼다. 수분 섭취가 부족했는지 쩍쩍 갈라지는 소리였지만- 그 애는 금방이라도 사람 잡아먹을 것 같은 아귀 같은 꼴로 제법 고운 목소리를 냈다.
"너 여기 살아?"
"...뭐 하는 거야, 여기서?"
"이걸 찾았어, 우주비행선 설계도라던데, 이것 봐. 저기 자빠진 저 철덩이가 원래는 비행선 갑판이라더라."
소년이 꺼내든 것은 남들이 다 주워가는 돈도, 금품도 아니고 그저 책 쪼가리였다. 마을 사람이 발견했다면 겨울에 장작으로 써먹었을 것을- 그 애는 소중하게도 품고 있었다. 그 안에는 용케도 녹물에 젖지 않은 허연 종이가 남아있었는데, 조금 그슬리고 지워진 부분도 있었지만 선명하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비행선에 타고 싶어.
소년이 문득 가리키는 쪽을 보고서야, 민윤기는 자신이 어렵게 지나온 구조물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진 비행선의 철제 갑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는 이 쪽이 NOA에서 운영하는 제조공장 이랬으니까- 그 안에서 뭘 만드는지 몰라도 이런 것이 있을 만하다.
그렇게 민윤기는 박지민을 처음 만났다. 마을에서 동양혼혈은 딱 둘 뿐이라 그런지 유대감을 가지고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시커먼 박지민 눈동자는 공장 폐건물에만 들어가면 먹이를 찾는 짐승보다도 더 밝게 빛이 났다. 그러다 폐건물을 벗어나 초원과 들판에 있노라면- 한가로이 설계도를 바라보는 그 녀석 얼굴에 금방 취하고 말았다. 그렇게나 열정을 가진 사람 앞에서, 민윤기는 별 수가 없었다. 그저 그 애를 따르는 수밖에.
남부에서 잡역부 일을 하는 부모와 생계를 저버리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은 제법 큰일이었다. 일단 마을에서는 그런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대학이야 성적이 좋으면 장학금으로 학교를 진학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젊은 일손 하나가 학업을 위해 떠난다는 것은 부모 등골 빼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덕분에 양친에게 뺨을 있는대로 얻어맞고, 미친놈 소리를 듣고서는 민윤기는 박지민을 따라 도시로 가는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다. 역시 귀신에 홀린 것이 틀림없다고-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거 봐- 우리는 별을 잡으러 갈 거라니까."
"잡기는 뭘 잡아, 잡다가 네가 타들어갈걸."
"저 멀리에서 보면 우리네 태양도 작은 별이겠지. 저 건너편에서는 우리 별을 보 면서 무슨 노래를 부를까."
"작은별 같은 거 부르겠지."
"에이- 식상해."
별자리 책과 행성 체계를 담은 책을 어디서 주워왔는지 주섬주섬 읽는 그 애 곁을 떠날 수 없었다. 민윤기한테 박지민은 매일 저녁으로 그저 살기 위해 뜯어오던 고구마 줄기나, 부족하다 못해 바닥을 드러낸 잔고나, 매일매일 찌든 얼굴로 가축에게 매질을 하던 부모를 잊을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요정 같은 거였다. 웃고 있는 박지민이 그리는 미래가 너무도 터무니없어서, 그게 이뤄질까 궁금해서- 그대로 따라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하면 그날 그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민윤기는 그 버스에 올라타면서부터 그 세계를 온전히 잃었다. 우주에 가면, 도시에 가서 배우면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이제 와서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박지민의 허무맹랑한 인류구원론 밖에는.
...박지민은 종종 들어오는 탐사관측 보고서를 정독하는 것을 즐겨했다. 그의 연구 논문 주제가 최근 우리은하 끄트머리에 형성된 스페스(spes *희망) 성으로 결정된 것 역시 큰 우연은 아니었다. 제법 크게 형성된 웜홀으로, 내부에 대해 자세하게 밝혀진 것은 없지만 웜홀을 이용하면 우리가 우주로 발을 뻗을 수 있는 범위가 꽤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몇억 광년, 아니 어쩌면 찾아갈 수 없는 공간을 접어 달리듯 이동시켜주는 그런 행운을 어디에서 부여잡을 수 있을까. 다만, 한 가지 나쁜 소식이 있다면- 그 근처로 생성된 블랙홀 하나였다.
덕분에 언제까지 열려있을지도 미지수인 웜홀은 한순간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아닌가. 블랙홀의 중력장 영향권에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금방이라도 빨려 들어갈 듯 위태로운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은 분명했다.
원망스러운 블랙홀을 바라보며 그는 종종 어린 시절 자신이 지내던 폐공장을 부르던 호칭을 따서, 그것을 아귀굴이라고 부르곤 했다. 정식적인 명칭보다도 와닿는 이름이다 윤기 역시 그 별칭을 애용하곤 했다. 안 그래도 생겨먹은 것이 입을 쩍 벌린 아귀굴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스페스에 갈 거야. 그 너머에 가고 싶어.
관련 보고서가 들어온 이후부터 그 애는 종종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2퍼센트에 희망을 걸겠다며."
"그럼."
"네가 떠나면, 이쪽에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까. 하물며 블랙홀 영향권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민윤기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주름진 미간 새로는 참아내지 못한 걱정이 밀려나온다. 분노와, 걱정과, 후회가 사람을 자꾸만 집어삼킨다. 그때 표정이 어떻게 일그 러졌는지- 거울로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온 얼굴 근육이 감정을 채 드러내지 못 해 후회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카만 눈이 별처럼 반짝이며 저를 응시할 때, 말리려던 말을 이어나가지 못한 성대가 저주스러웠다.
"살아남을 거야."
"....."
"네가 있으니까."
한 사람이라도 남을 거야. 그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나는, 내 눈으로 저 너머를 봐야겠거든.
너는 이기적이었다. 다분히 이기적인 말로 나를 짓눌렀다. 함께 떠안기로 약조했던 책임감을 던져버린 채, 불나방처럼 네 빛을 향해 뛰어들겠다는 말을 던졌다. 희번뜩하게 빛이 나는 눈을 보면서- 어린 시절 네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던 그 순간 을 기억한다. 기어코 하늘로 치켜 올라간 손이 희고 고운, 볼살이 남아 아직 앳된 얼굴 위로 올라간다. 벌겋게 물들어 아래로 툭 떨어지는 고개는 금방 손자국이 남아 핏덩이처럼 붉어졌다.
때린 손이 아리게 울려왔다. 축 쳐진 고개가 다시 들려올라왔을 때, 민윤기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느 때보다도 훨씬 말갛게, 그저 행복한 듯이 웃는 얼굴 을 보면서- 그저 눈시울을 붉힐 따름이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른 누구의 생명도 아님을 너는 끝끝내 알아주지 않았다. 이제 딱 하나 남은 소중한 가족이 너 뿐이라는 말도 들어주지 않았다.
"연락 할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때까지, 닿는 데까지."
그리고 끝내는 내 손을 꼭 부여잡았다.
...실험 샘플을 담은 진공팩이 꽤 묵직하다. 화성 토양에서 키워낸 식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시선을 돌려본다. 연구동에서 나올 즈음이 되면 화성 쪽에서는 벌써 해가 지는 시점이었다. 묵직한 실험 보고서에는 또 한 줄이 적혀 들어간다. 보고서를 들고 본관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지구가 아닌 화성에서의 노을을 볼 수 있다. 참-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고 차가웠다. 뜨거운 태양이 여물어가며, 순간 불어 닥치는 묵직한 모래바람에 눈을 감았다 뜨면 꼭 사막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생명의 자취가 남아있지 않은 이 붉은 행성은 꼭 우리 행성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발 앞서 걷던 지민은 문득 져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발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ㄴ,무- ㅇ"
지직대는 무전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오다 툭툭 끊어진다. 우주복 수리가 필요한 시점일까, 매번 이렇게 툭툭 끊어진다. 헤드를 툭툭 치던 민윤기가 지민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뭐라고?"
"너무 멀다고."
"...뭐가."
그는 달리 답이 없었다. 노을 진 태양이 시야 가득히 밀려들어와 눈이 부시는 와중에도,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작열하는 태양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아래 털썩 주저앉는다.
상부에서 지정한 복귀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외부에서 오래 머무는 것 자체가 경고사항이긴 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산소 소비량이 크기 때문인데, 딱히 개의치 않는듯 박지민은 그대로 붉은 모래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자잘한 탈선이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지민이 이럴 때마다 그는 그 옆자리를 지키고 서 있곤 했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윤기 역시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구가 아닌 행성에서의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꽤 색다른 기분이었다. 처음 이곳 스테이션에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당연히 그러했다.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지나간 나머지 딱히 색다를 것도 없는 붉은 토지가 되어버렸지만, 그 경관만큼은 아름다웠다. 꼭 지구의 타들어가는 사막에서 지켜보는 노을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곳보다는 훨씬 붉은 기가 강하고 모래바람이 언제 변해서 사람을 덮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곳이긴 했지만.
태양은 금방 꺼져 들어갔다. 타다 만 잿더미 위의 담배꽁초 같이 한순간에 저물어간다.
불그스름한 타원형이 모래 산 너머로 모습을 온전히 감춘 이후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제법 청명한 하늘 위로의 별들이 선명하게 빛이 난다. 운이 좋으면 오로라도 가끔 보이는 곳이었다. 모래 폭풍이 불지 않는 화성은 제법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기후와 말라붙은 물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해지긴 해도, 태양계에 유일하게 남은 지구와 형제 행성이 아니던가.
"다 끝나면, 어디로 갈 거야?"
"지구로 돌아가거나, 탐사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달리 답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윤기에게 있어서는 둘 다 썩 내키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우주비행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는 가족의 몰살으로 쓸모를 잃었다. 함선 기장의 직계 가족에게는 의례적으로 생활비 지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부모의 반대도 무릎쓰고 이곳 까지 올라온 것이었는데- 그것을 갚을 수 도 없게 되었다.
서늘한 공기가 점차 우주복을 파고든다. 팔목에 장착한 센서등에서는 날씨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새카만 어둠 아래서, 삐- 삐- 하는 경고음 소리만 윙윙 울린다. 어린 시절 듣던 개구리 소리나,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은 일절 들리지 않으면서- 이 세계에도 해가 뜨고 지는 것이 기묘하기만 하다. 닮은 듯 닮지 않은 모조품을 보는 기분이랄까. 아무래도 정감이 가지 않았다. 손을 뻗어 지민의 우주복 상단을 잡아챘다.
이만 복귀하자는 신호였다.
그 애가 고개를 저어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를 끌고서라도 본 캠퍼스로 복귀 했을 것이다.
"뭐 하는 거야."
[나ㄴ, -]
지직대는 잡음과 함께 무전기에서는 소리가 끊어진다. 매번 말썽인 것이 성가셨지만, 힘으로 잡아당겨도 윤기를 따라오지 않는 지민을 바라보며 그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끝이구나, 지금이. 네가 고하는 이별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투명한 우주복 헤드를 멀거니 바라보며 이별을 고하는 네 입술을 멀거니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녹물과 산화된 철덩이 사이에서도 희망차게 중얼거렸듯이- 그 애는 이번에도 붉디붉은 모래알갱이를 배경으로 입을 놀려댔다.
[ㅇ,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어.]
끊겼던 통신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길 반복한다.
"아귀가 잡아먹지 않는데도 웜홀의 수명이 끝나."
"....."
"...오늘 가야해."
잠시 앉았다 일어난 새에, 그의 손에는 작달막한 돌멩이가 쥐여져 있었다. 그리고 와락 달려든 너는, 우주복 헤드를 가만히 가져다 대었다. 여태까지 받은 사랑에 감사하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가만히 눈을 감고서는.
길고 긴 속눈썹이 잠깐 파르르 떨리는 것이 기억에 남은 마지막이었다. 작은 돌멩이가 산소를 공급하는 헤드를 팍 찔러낸다. 튼실한 유리였지만, 몇번 치는 손길에 깨져버리고 만다. 급속도로 흘러나가는 산소 앞에서 눈앞에는 습기가 차고, 금방 시야가 어두워져갔다. 우주복 손상을 경고하는 삐-삐- 소리와 함께.
끝끝내, 너를 잡을까봐서 이런 일까지 벌이고선 도망을 친다. 들키는 것을 방지 하겠다고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사랑하는 이를 쓰러트린 채 도망을 가는 너는 끝까지 너는 무정한 사람이었다.
...본인의 위치추적기까지 종료한 채 비행을 시작했다는 지민의 소식이 다시 잡힌 것은 이미 지구나 화성에서 벗어난 지 한참 된 지점이었다.
[NOA837, 38도 기준으로 자동항로 시스템을 세팅했습니다. 모든 시스템 정상 가동중, 동면 전 마지막 연락입니다.]
통신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절한 직후 처음으로 들은 그 애 목소리이기도 했다. 아무런 말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쫓아서 달려간다거나, 통신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부디 남아달라던 그 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구조선도 보낼 수 없는 겁니까."
"그랬다간 언론에 모든 게 노출될 겁니다. 게다가 블랙홀 정 중앙으로 뛰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희생만 더 늘릴 뿐이죠."
"가능성이라도 고려해볼 수 있잖아요."
"여기서 스페스 웜홀까지 다다르는데 3년이 넘게 걸립니다. 그리고 그 웜홀은 그 안에 수명이 끝나요. 저 아이가 도착하기도 전에 블랙홀 중력장에 휘말릴 겁니다."
아예 기회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끝끝내 거짓말이었던 거다. 끝을 알고 뛰어든 절벽이었다. 아귀가 끝내는 그 모든 것을 아득바득 잡아먹고 마는 구나. 털썩 주저앉은 민윤기의 입가에서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한쪽 귀에 꼽은 이어폰에서는 여전히 네 목소리가 나왔다. 지민의 녹음본을 들고온 통신담당자는 윤기 손에 작달막한 조형물 하나를 쥐여주었다. 네 손때가 잔뜩 탄, 단단하고 따가운 장난감이었다. 네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던 것.
[안녕, 윤기. 네가 보고싶어.]
"....."
[우주선 안인데도 꽤 추워. 내가 추위 잘 타는 거 알지, 담요라도 가져올 걸. 아쉽게 됐네. 사실 모든 물건을 두고 왔거든.]
"....."
[이기적인 거 알고 있어. 참 말도 안듣고, 그렇지. 그거 알아, 윤기? 네가 처음 아귀굴에 들어왔던 날 말이야. 그때는 네가 너무 하얗고 아름다워서- 꼭 빛이 내려 온 줄 알았어.]
"제발,"
[지금 생각해보면 꼭 맞는 것 같기도 하네. 너는 내 가장 아름다운 빛이야.]
[보고 싶다.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