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가 시작된 건 7살쯤 할머니 집에서 맞이한 방학 때였다. 할머니가 사는 작은 바닷가 동네에는 유명한 설화가 있었다. 바닷가에 인어가 산다는 소문.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 중 간혹 어리거나 젊은 청년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모두 인어의 소행이라는 것이었다.
어린 나이였던 탓인지 몰라도, 그 설화는 7살이었던 나에게는 꽤 큰 부분이었다고 여겨진다. 그 일로 없던 트라우마까지 만들어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날은 유독 해가 환하던 날이었다. 바닷가의 바람은 선선했고, 파도는 잔잔했으며 햇살은 적당히 무더웠다. 부둣가에 앉아있던 엄마의 이마에 땀방울이 방울방울 맺히고 아빠가 이내 물고기를 포기하고 낚싯대를 들어 올렸을 때 즈음 물가 위로 무언가 보였다.
푸른색과 흰색이 섞여 보글거리는 거품 아래로 눈에 띄게 빛이 나는 비닐 따위가 햇빛을 따라 반짝거렸다. 잔잔한 물살이 우물거릴수록 그 비닐은 더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어린아이의 눈으로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탐이 났다. 그래서였다. 어린 내가 세모난 부포들을 두 손과 발로 기어가서는 손을 뻗은 건.
검지 끝에 날씨와는 달리 시원한 물이 찰랑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의 절반이 그 차가움에 부르르 떨릴 때 그때, 손끝에 서늘하고 반들거리며 날카로운 무언가 닿았다. 오묘하게 청록색 빛과 푸른 빛을 한 번에 띄는 그것은 바다의 푸름을 투영하는 유리 조각도, 비닐도 아닌 비늘이었다. 비늘. 생선의 비늘처럼 여러 색이 한 대 뒤섞여 아우성을 치는 비늘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본능적으로 몸이 뒤로 주춤거리며 손을 급히 떼어내려는 바로 그 순간. 소름 끼치도록 차갑고 축축하면서도 맨들한 손바닥이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 눈앞에는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깜깜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말 그대로 시야가 깜깜했다. 시야 내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푸르고 새파랗고 아래로 갈수록 검고 검은 것들 뿐이었다. 입에서 나오는 거품들은 숨이 차오른다고 느끼지도 전에 이미 몸에서 빠져나갔고 그 거품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전에 시야 앞에 가득 찬 형체에 혼이 팔렸다.
푸른 비늘이 몸에 절반 이상을 덮고 있는 사람. 아니, 인어. 귀 뒤에는 무언가 펄럭거리는 기다란 비늘 따위가 물살에 휘날렸고 그 남자의 입에서는 어떤 거품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남자의 머리카락은 저 가장 밑에 위치할 짙은 검은색이었고 눈동자는 가장 위에 있는 옅은 푸른색과 하얀 거품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았다.
숨이 찬다. 코로 들어오는 그것은 물뿐이다. 저항하려 작디작은 손과 얇디얇은 팔을 휘둘러 보지만 7살의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저항도 없이 나는 비늘로 뒤덮인 사내를 따라 가라앉는다. 허파 속에 물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지만, 몸에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홀린 듯이 저 깊은 곳으로 나 자신을 놓아버린다. 가라앉고. 가라 앉고. 가라앉는다.
“헉헉, ”
땀 범벅이 된 머리 위로 익숙한 손길이 닿아온다. 포근한 섬유유연제 냄새와 금방이라도 울 것같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눈을 맞춰오는 상대.
“ 지민아. ”
몇 번이나 잡아봤을 손 위로 제 손을 덮으며 저도 모르게 평온한 웃음을 지었다. 따뜻한 상대의 온기가 이제는 소름 끼치게 다가왔음에도 그것을 쉽사리 놓을 수는 없었다.
“ 형 괜찮아요? 또 왜 연락을 안 받았어요. 걱정했잖아요…. 저번처럼….”지민이의 입술이 달싹거리다가 결국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마도 저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그날, 그 상황에 대해.
“ 에이, 그런 거 아냐.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이제 그런 상상 안 해. 요즘 상담도 꼬박꼬박 잘 갔어. ”
느릿하게 끄덕여지는 낯 위로 어느 정도의 안심이 들어차는 것이 보였다. 눈길이 습관처럼 지민이의 목덜미로 향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곳에는 하얗고 조금 불그스름한 피부만 덮여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박지민을 의심하기 시작한 건 박지민이 우승을 했던 대회 중반이었다. 박지민은 언제나 그렇듯 내가 가장 사랑하던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손과 팔, 다리 등 신체의 모든 부분이 올곧게 뻗어졌고 곡선을 그리듯 아름답게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사람의 몸이 하나의 선 혹은 면처럼 펄럭거리고 나풀거렸다. 아름답다. 민윤기는 저 모습을 사랑했다.
박지민은 늘 감정 표현에 있어 흘러넘치는 것들을 표현하는 편이었다. 흘러넘치는 슬픔. 사랑. 애정. 증오. 박지민의 표현력은 그 감정들이 홀을 가득 채우고 가슴 어딘가를 아릿하게 만들며 숨이 벅차게 했다. 한 사람이 과연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글펐고 동시에 누군가를 애타게 그렸으며 넘치는 사랑을 떠넘겼다. 그렇게 박지민은 무대를 장악하는 편이었다.
애달픈 선율이 귀를 윙윙거리며 울리게 했다. 꼭 박지민이 춤을 시작하면 일어나는 일이었다. 귀가 웅얼거리며 소리를 머금기 시작하고 눈앞에 모든 것들이 박지민 말고는 흐릿하게 없어져 간다. 그렇게 되면 모든 세상이 박지민만을 위해 멈춘 것 같아진다. 소리도 윙윙거리며 먹히고 눈도 흐릿해지고 정신이 박지민의 동작 하나하나로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살피는 것이다. 박지민이 손가락을 쫙 펼쳤다가 접으며 몸을 끌어안으면 제 속에 있는 모든 오장육부가 그곳에서 꾹 짓눌리는 기분으로 바뀌고 허리를 비틀며 몸을 휘두르듯 돌리며 홀린 듯 제 팔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려 움찔거렸다.
팔이 이상하게 꺾이며 두 다리가 몸을 공중으로 날린다. 결국 몸이 바닥을 기어가듯 떨어지고 그 현상에서 박지민의 두 눈은 나를 향한다. 그 순간이었다. 숨이 턱하고 막힌 것은. 그래,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박지민의 춤은 나를 그렇게 힘겹게 만들었고 저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게 했다. 감정의 심해로 빠져드는 것이다. 숨도 시야도 막혀있는 그런 깜깜하고 끝없는 감정의 심해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비틀어져 있는 박지민의 목에서 반짝, 하고 무언가 빛이 났다. 그것은 청록색 빛을 띠고 있었으며 오묘하고도 짙은 푸른색 따위를 머금고 있었다. 마치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그것은 그래.
비늘이었다.
갑자기 숨통이 확 하고 트였다. 공기가 빠르게 허파를 가득 부풀게 했다. 더, 더, 더, 계속해서 공기가 들어왔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했다. 숨이 벅차올랐다. 세상이 멈춘 듯 박지민과 눈이 마주친다. 헐떡거리는 숨, 생리적으로 차오르는 눈물, 귀를 윙윙거리는 심해의 소리, 파도가 차갑게 저를 감싸 오르는 물결의 느낌. 모든 것을 느끼며 박지민의 눈이 이상한 색들로 가득 차오른다.
“ 인어….”
그게, 박지민을 향한 의심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끄럽게 손뼉을 치는 상황. 박지민의 목덜미에 비늘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눈부시게 그를 비추는 빛만 보일 뿐. 다만, 헐떡거리던 숨은 그대로였다.
“ 형 있잖아요, 내일 우리 만나기 전에 동아리에 가 있을래요? 내일 그 조끼리 연습해야 하는 거라 혼자 먼저 나오기 힘들 것 같아서요. ”
말랑한 볼이 올라가면서 귀여운 볼록 광대를 만들어낸다. 늘 그렇듯 그 볼 위에 있는 홍조도, 물면 과즙 향이 날 것만 같은 도톰한 입술도 제 눈에는 사랑스럽게만 다가오는 것들이었다. 오물거리며 제 할 말을 잘도 내뱉어내는 입술이 귀여워 저절로 손이 올라갔다. 가볍게 볼을 쥐어보려 내뻗던 손이 갑작스레 냉하게 느껴지는 피부에 화들짝 놀라 손을 뗀다.
동아리, 박지민을 처음 만난 장소이자 자신을 향하던 의심이 박지민으로 표적을 바꿔 일을 기어코 키운 곳이기도 했다. 둘이 함께 활동을 이어간 동아리는 스키 동아리였다. 운동에 ㅇ 자도 싫어하는 사람이 왜 운동이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동아리의 회장이 석진인 것을 얘기하면 그 누구든 납작하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나 그렇듯 저를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무언가를 굳이 하는 곳으로 이끌고 간 사람은 석진이었다. 스키가 주라기보다는 사계절 내내 그걸 핑계로 술을 마시고 놀러 다니는 동아리였으나, 어찌 되었든 동아리 내에 부원들이 서로 굉장히 친근한 관계였고 많은 곳을 오가며 함께 생활한 것은 맞았다.
그러니까, 석진의 강력한 강조로 낚시를 하러 갔을 때였다. 조금 멀찍이 떨어져 확실히 바다와 가까이 가지 않도록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지민이가 가장 끝 가장자리에 앉아 저를 불렀다.
“ 형, 형 여기 와봐요. 여기서 보면 고기도 엄청나게 잘 보여요. ”
그렇게 말한 지민은 물속에서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물고기들을 보고 있는 듯했다. 조심스레 지민의 옆으로 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그래도 지민이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제가 가장 끝의 그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그래. 비늘이었다. 작은 귀 뒤로 얇게 채를 쓿어놓듯 아가미 따위가 벌름거리는 것이 보였다. 살구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어야 할 그 부위는 분명히 푸른색과 초록색이 여기저기 번져 있었다. 윤기의 손가락이 눈을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저번에도 지지난번도 박지민을 붙잡고 그곳을 더듬어 보고 사진을 찍어보았다. 그러나 언제나 결과는 똑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맨살 외에는….
윤기의 검지가 지민의 귀 뒷부분을 꾹 누르듯 손을 뻗었다. 직접 만져보면 확신이 올 것만 같았다. 다른 부분과는 달리 서늘하고 냉한 기운이 손끝에 닿아왔다. 손끝이 닿음과 동시에 박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목덜미를 급히 감싸며 동그란 눈을 하고 저와 눈을 마주하는 박지민.
“ 형, 이거 반짝반짝 빛난다? 잘 봐. ”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박지민이 부포 아래, 바다의 어딘가로 떨어져 버린 것은. 그래, 박지민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곧바로 건져진 박지민과 부포 그 가장자리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을 때리고 있던 나는 그렇게 곧바로 집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던 길에는 아무 말도 그 어떤 생각도 똑바로 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옛날 옛적 7살 때 해주던 얘기가 끊임없이 머리를 울렸다.
“윤기야, 인어는 사람을 홀려서 데리고 간단다. 그것들은 인간을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올바르게 전해주는 법을 모르지. 절대 인어에게 홀리면 안 된단다. 이미 한 번 탐냈으니 그것들은 그 소름 돋는 비늘이 가득한 손을 너에게서 놓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알았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 쿨럭거리며 헛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차가운 물들, 괴롭다는 듯 연신 찡그리는 미간까지. 수건을 감싸고 병원으로 향하는 박지민에게서 민윤기는 그래, 7살의 자기 자신을 봤다. 저도 모르게 입술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옛날 마을에서 살던 인어의 이야기를,
그 이후에는 의심의 연속이었다. 박지민이 제게 먼저 고백을 하지 않았던가? 계획적인 움직임이었음 어쩌지? 그러고 보니 지민이 몸이 물에 완벽히 적셔진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인어는 역시 물에 닿으면 비늘 따위가 보이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느꼈던 사랑, 지민이의 춤을 보기만 하면 느끼던 벅차오름이 모두 의도된 탐욕의 결과였다면? 박지민은 누구지?
박지민이 누구야?
넌 그에게 뭐지?
의심들이 질문으로 포장된 채 박지민에게 그대로 내뱉어졌다. 그때 지민의 표정이 어땠더라, 사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제 시선은 언젠가부터 습관이 되어버린 듯 지민의 목덜미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에.
“ 형? 내 말 듣고 있어요? 어디 또 아픈 건 아니죠? 어디 아프면 곧바로 얘기해줘야 해요. ”
지민의 입술이 다시 달싹이며 그리 말했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바라보는 박지민의 눈이 오묘하게 여러 색으로 일렁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그것들을 꿀꺽 삼키듯 눈을 급히 깜빡거렸다. 이것은 꿈이자 자신의 허상일 터였다.
“ 어, 나 괜찮지. 왜 걱정하고 그래. 이제 진짜 괜찮다니까. ”
서늘하고 반들거리는 손끝에서 얇고 날카로운 비늘이 느껴진다. 단단하게 부여잡은 손에는 어느새 온기 대신 축축하고 눅눅한 액체 따위가 흘러내렸다. 습관처럼, 그래 습관처럼 지민의 목덜미를 살핀다. 청 푸른색과 짙은 남색이 섞여 오묘하게 빛나는 비늘들이 반짝반짝 해를 받아 빛이 났다.
“ 지민아, 우리 이번에 방학하면 바다를 가볼까?”
왼손이 비늘을 바스러트리려 지민의 목덜미를 꾹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