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아무런 관련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 이건 추악한 제가 올리는 기도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순수한 새끼 하 나 물어서 타락시키는 악마 새끼가 겨우 올리는 기도입니다. 제가 어떤 마음인지는 아버지 당 신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겠지요. 그런데 아버지, 그리 불쌍히 여기셨다면 우리를 측은히 바라보신다면 아니 그 아이를 사랑하신다면 이리 고난을 주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주시는 고난이 겨우 저를 향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안됩니다. 그 아이는 아니지요. 아버지가 가장 어여쁘게 여긴 천사를 탐낸 제 잘못을 왜 그 아이에게 물으시나요. 아버지, 죄를 지은 것은 다 저이니 버림받은 천사를 만들지 말아 주세요. ...이리 말해도 제 추악한 진심이 숨겨지지 않을까 요. 그럼 차라리 처절하게 버려주세요. 지옥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아니, 아닙니다. 그냥 우리를 가엾게 여겨 고난을 걷어주세요.
우리 학과 모든 사람이 저희를 보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감히 저는 이게 사랑이라 봅니다. 네, 그 천사를 사랑한다고 칭합니다. 이 기도가 회개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랑한 다고 고해하는 것이 회개가 될 수 있나요. 사랑을 회개할 수 있나요, 아버지. 저는 이제 모든 것에 의문이 듭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가엾게 여겨 내린 천사일까요. 그럼 제가 감히 아버지의 것을 탐낸 것이 됩니까?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는 어차피 하늘에서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저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안쓰럽게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저희의 사랑을 응 원해주세요. 그게 제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입니다. 저희를 축복해주세요. 이게 제 기도의 목적 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아버지는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두렵습니다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어리석은, 이기적인 자식을 용서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올리는 기도
*
대학생인 지민과 곧 대학을 졸업할 나이의 윤기. 겨우 2살 차이인 그 사이에는 생각보다 꽤 큰 차이가 존재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래, 둘의 사랑이 달랐다. 지민은 사랑이라면 어떻게든 붙잡아야 하는 것을 윤기는 사랑이어도 포기할 줄 알았다. 지민은 윤기의 사랑을 용기가 없다 칭했었고, 윤기는 지민의 사랑을 그저 어린놈의 치기라 불렀었다. 그랬던 둘이 사랑하게 된 건, 글쎄 모두가 마귀의 장난이라 말했다. 어린 나이에 이미 전도사인 윤기와 신실한 목사님 의 아들인 지민의 사랑이 주변인들에게 축복받을 리가 없었다.
둘이 사귀는 게 밝혀진 건 예배당에 있는 작은 기도실에서였다. 원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모여있던 터라 모두가 자유롭게 기도실을 들리곤 했었다. 이에 예배당은 예배가 없어도 항상 열려 있었고, 윤기와 지민은 그러한 점을 이용해 기도실에서 자주 만났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테니. 그래도 가끔 이러다가 벌을 받으면 어떡하냐는 우려하는 윤기의 목소리도 지민이 키스를 할 때면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렇게 만나던 둘이 기도실에서 키스하던 와중 과대에게 들킨 건 윤기는 벌이라 여겼고, 지민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과대가 소리 지르며 기도실을 뛰쳐나간 후 소문은 꽤 빠르게 돌았다. 그때부터 윤기와 지민은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했다. 그래, 민윤기가 두렵게 여겼던. 가끔 참지 못하고 소리 내 말하고 말았던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했던 탓이었을까 윤기는 담담 했다. 오히려 지민이 떨기 시작했다. 도망치듯 떠나가는 지민을 쫓아 다시 만난 건, 숭고한 희생이 박혀 죽어있는 곳의 아래였다.
“형, 나 못하겠어.”
“...”
“우리 그만하자. 그럼 봐주지 않을까? 회개할 수 있지 않을까?”
울음 섞인 지민의 목소리가 윤기의 귀에 박혔다. 가엾게 무릎 꿇고 떨고 있는 지민을 윤기가 끌어안았다. 윤기는 이미 지민을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지민아, 어차피 바뀌는 건 없을 거야. 넌 이미 낙인이 찍힌 거야.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마태복음 16장 27절
지민아, 무서워하지 마. 두려워하지마.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은 갚아주실 테니까. 이미, 되돌릴 수가 없잖아. 다정스레 말하는 윤기의 말에 지민이 윤기를 마주 안았다. 끊임없이 흐르는 지민의 눈물을 윤기가 닦았다.
“지민아. 이건 우리가 시작한 거잖아. 그래도 손가락질은 다 내가 받을 테니까 너는 날 버리지만 않으면 돼.”
그럼 내가 널 섬겨줄 테니까. 너는 그냥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척해. 어차피 아무도 모르잖아. 저 위에 계신 분은 어차피 아무 말도 안 하실 테니까.
“형, 괜찮아?”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복음 9장 13절
윤기의 손을 잡은 지민의 손이 축축했다. 본인도 어지간히 불안해 보였지만 그런데도 꿋꿋이 윤기를 먼저 챙겼다. 전도사인 윤기가 교회에서 쫓겨난다고 소문이 퍼져있었다. 지민도 집에 서 난리가 난 걸 윤기도 아는데 지민은 윤기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도 안쓰러워 보여 윤기는 그저 말없이 지민의 손을 꽉 잡았다.
“괜찮아. 너는.”
“...나도 괜찮아. 생각보단 나쁘진 않은 거 같아.”
“거짓말.”
“진짠데.”
그리 말하는 지민의 얼굴이 너무나도 창백해 윤기는 지민의 볼을 쓰다듬었다. 근데 지민아, 그거 알지. 우리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거. 속삭이듯 내뱉는 윤기의 말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 였다. 응, 절대 놓지 마 민윤기. 두려우면 같이 가자, 어디든.
“그래, 지옥이어도 같이 가자. 지민아.”
“왜? 내가 없으면 천국은 천국이 아니여서?”
“...글쎄”
윤기의 대답을 기대하는 듯이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지민을 보며 윤기가 설핏 웃었다. 당장이 라도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말들을 윤기는 삼키며 지민의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여전히 기대하 며 바라보는 지민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민이 묘한 눈빛을 보내왔다. 이제 난 천국에 못 가 는 새끼니까, 네가 지옥으로 떨어져야지. 이걸 들으면 지민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으나 두렵진 않았다.
*
아버지, 이 죄인이 다시 아버지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결국, 떳떳하지 못하게 도망치듯 떠밀려왔습니다. 지금 학과 내에 저희를 퇴학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일생을 꽤 의 인처럼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한순간에 죄인이 되었네요. 아버지의 교리에 따라 베풀어줬던 모든 이들이 다 찬성하는 것 같네요. 아버지 멍청한 저는 이제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동성애는 안된다는 교리를 어긴 저희가 죄인일까요? 저는 이제 저 사람들이 악마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희는 그냥 사랑하는 것뿐인데 이리도 죄인 취급하는 것이 맞아요, 어쩌면 저 스스로가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브와 아담의 무책임한 책임도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젠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지려고 합니다.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죄인이 된 제 기도를 아버지께서 들어주시지 않을 것 이라고. 지금 제가 하는 이 기도가 아버지가 아닌 사탄에게 갈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도 저희는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연약한 인간 새끼가 아닙니까. 원죄를 안고 태어나 죽기 전까지 예수님의 피를 따라가야 하는 멍청한 인간 새끼가 아닙니까.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지지 않습니다.
정말 남들이 말했던 악마 새끼가 되고 있는 걸까요. 제가 정말 악마가 된다면, 사탄이 된 다면 아니 되고 있다면 아버지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 어리석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그 교리는 좀 바꿔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감히 저따위가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 틀렸다 말합니다.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사랑을 따라 지옥으로 걸어가려 합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매달리 고 싶습니다. 아버지, 사랑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면 아버지 당신의 교리는 틀린 게 아닙니까?
가장 처절히 떠오르는 감정을 묻으라고 한다면, 지워버리라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지옥이 아닙니까. 그러니 죽기 전까지 저희가 행복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제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세요. 이 못난 놈의 희생을 받아주세요.
결국, 의인이 되지 못한 죄인의 기도를 받아주세요.
그리고 이게 제 마지막 기도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