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다.
황혼에 젖어가는 골목의 하늘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
소중하다. 잊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잊고 싶지 않아서 깊이 세긴 골목에서의 유일한 기억이라서.
“해, 지나봐요.”
붉은 태양빛이 꺼져가는 회색 골목길. 누런 가로등이 띄엄띄엄 깜빡이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 본다. 아직 저 구석의 하늘은 해가 채 덜 저물었는지 점점 붉어져간다. 잠깐씩 놓치는 시선에 담기는 해는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진다. 미처 해가 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붉은 빛의 하늘도 서서히 파란색 어둠에 섞여 보라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듬성듬성 보이는 작은 흰색 점들이 흐릿하게 빛난다. 그마저도 지나가는 구름에 가려진다. 꼭 있지도 않은 것처럼.
“형, 형은 달동네가 지긋지긋 하지도 않아요?”
“지긋지긋하지. 꼴도 보기 싫어.”
끈적한 날씨에 머리만 살짝 들어 주위를 살폈다. 난잡하게 어질러진 물건들을 정리하기에도 벅찬 작은 방. 지긋지긋했다. 슬쩍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좁은 골목길이, 듬성듬성 빠져있는 빨간 벽돌 담과 철재 판자들이. 조금 더 시야를 내리면 보이는 흰 칠이 다 벗겨진 아스팔트 도로가, 시커먼 색으로 눌러 붙은 씹다 뱉은 껌이, 신발에 짓이긴 타다 만 담배꽁초가, 찌그러진 싸구려 커피 캔이 나뒹구는 이 골목이 몸서리치도록 지겨웠다. 지긋지긋 하지도 않냐는 네 물음에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 생각할 필요도 없을 만큼 난 이 골목이 지겨우니까.
“근데 어떻게 해.”
순간 정적이 흐른다. 이유는 알고있다. 둘 다 답하지 못할 질문 이였으니까. 하지만 당연했다. 할 수만 있었다면 진작에 벗어났을 이 골목이 지겹지도 않냐는 질문에 돌아갔을 답은 언제 물어보던 같을 거니까. 목이 고장 났는지 고정이 안되는 칠이 벗겨진 선풍기가 눈치없이 꽤 요란하게 탈탈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왕복운동을 한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싣고 오는 선풍기라도 없으면 못 버틸 여름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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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벌레라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했다. 능력 없는 사람들의 신세 한탄 따위에 불과하다고, 뻔하디 뻔한 인생 실패자들의 남 탓 레퍼토리는 내 인생에 없을 거라고. 분명 보란 듯이 성공 하겠다고 다짐한 몇 해전의 나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골목 입구쯤 다다르면 나는 가난의 냄새는 내 옷, 머리, 몸 아니 뼛속 깊이까지 스며들었다. 아무리 박박 씻어도, 비싼 비누로 몸을 닦아도 지워지지 않을 이 지독한 냄새는 나를 묶어 두었다. 이 달동네에.
처음엔 내 탓인 줄로만 알았다. 목표가 없어서, 꿈이 없어서, 재능이 없어서, 노력이 부족해서. 나보다 오래 산 어른들의 말이 설마 틀릴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였다. 모든 실패는 나 하나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시발, 존나 무식했다.
그렇게 변화라고 할 만한 건 조금 더 자란 키와 바뀐 옷 사이즈. 진부하고 처절한, 누가 봐도 실패한 인생이라고 평가될 만한 내 인생에서 바뀐 건 그 뿐이었다. 어느덧 사회를 직면해야 할 스무 살의 생일이 고작 1년 앞으로 다가왔던 그 때. 사실 이미 이 찌들어버린 사회를 그 누구보다 가깝게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청소년이라는 헛웃음 나오는 울타리에 최소한의 보호 만이라도 받고 있었을 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반대인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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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자요?”
“어?”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을 안하길래. 자는 줄 알았죠.”
“미안, 딴 생각하느라.”
“내가 옆에 있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박지민 또, 또. 까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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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그다지 달갑지 않은 열아홉의 생일에 만난 사람이었다 너는. 고작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백 금발에 가까운 머리를 한 박지민. 이 탁하고 침침한 골목에 발길 한번 들여보지 않은 사람처럼 순수하고 맑게 웃는 네가 이질적으로 보였다. 여태 생생하게 남은 걸 보니 적잖은 충격을 받았나 보다. 그래도 열아홉, 마지막 십대 시절의 생일이랍시고 초코파이에 작은 초 하나를 꽂고 쪼그려 앉아 멍하니 그 불꽃을 쳐다보고 있었을 때. 다가오는 발길이 있는지 인지도 못한 내 어깨 너머로 처음 지민이 네가 말을 걸었을 때.
“촛농 떨어지면 못 먹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거는 말에 꽤 날카로운 눈초리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고 옆에 다가와 쪼그려 앉아서는 대신 그 촛불을 꺼버렸을 때. 아직 그 그림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남의 생일 초를 끈 사람치고는 꽤 뻔뻔한 얼굴로 웃는 네 얼굴을 빤히 쳐다봤었지.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초코파이 한 입 달라는 말 이었잖아. 어이가 없어서 터져 나온 웃음이 한참 이어졌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지금 내 옆에 박지민 네가 누워있는 걸 보면 꽤 좋은 사이가 된 것 같다. 좋은 사이라, 그게 무슨 사이인 걸까. 사실 모르지는 않는데 확신은 못하겠다. 아직은 그 누구도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없어서. 나조차 불행하니까. 아직 때 타지 않은 너를 굳이 나로 막고 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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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휴학한다면서요.”
“어, 그러려고.”
“군대도 갔다 온 사람이 웬 휴학? 민윤기 설마 과탑 못했나?”
“점점 말이 짧아진다? 그리고 그런 거 아니거든.”
“장학금으로 학교 다니는 사람이 휴학이 뭐가 필요해요. 난 빨리 졸업하고 일이나 할거야.”
“이번에 아는 선배가 창업을 한다네. 들어와서 일 할 생각은 없나 물어보길래 그냥 그러겠다고 했어. 어차피 학교도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거 아니니까.”
“창업? 스타트업인데 같이 하다가 망하면 형만 손해 아니에요?”
“사업 계획 들어보니까,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 같아서. 혹시 모르잖아 성공할지 누가 알아.”
“괜히 형만 힘들어질까 봐서 그러죠. 걱정되니까.”
“여기서 힘들어져 봤자 뭐가 더 있겠냐? 까놓고 난 이미 바닥인데. 잃을게 어디 있어.”
“어차피 형 마음이긴 한데, 모르겠다. 열심히 해봐요. 형은 뭐든 잘하니까.”
“바빠서 박지민 자주 못 놀아줄 텐데. 너 서운해서 어떻게 하냐?”
“제가 무슨 애도 아니고. 그리고 저 친구 많거든요?”
“친구 많다는 놈이 맨날 말도 없이 우리 집 문 따고 들어와서 누워 있나. 너도 이제 친구 만들어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나랑만 놀래.”
“형 이 골목 나가기 전까진 나랑 같이 있기로 했잖아요. 나갈 때 나도 데리고 나가주면 좋고. 아, 아니다 난 내 힘으로 나갈 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요.”
“또 그 이야기냐.”
“인생은 길어요. 우리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이야 형.”
“...”
“또 대답 없는 것 봐. 형, 난 형이 곧 여기 나갈 것 같아. 그냥 직감이랄까? 이번엔 진심이니까 한 번 믿어봐요. 어차피 밑져도 본전이니까.”
“알았다, 알았어. 대신 너도 친구 좀 만들어 이제.”
“형이 서운해 할까 봐 그러죠.”
“웃기지 말고, 나 이제 진짜 바빠져. 집에 언제 들어올지도 모르고. 주인도 없는 집에서 혼자 멍하니 시간 때우지 말고 너도 이제 학점 관리도 해야지.”
“으 잔소리. 알았어요 알았어. 형 진짜 그 선배라는 사람 돕기로 마음 굳혔구나?”
“어, 어차피 취업도 힘든데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려고.”
“알았어요, 응원해. 나 그럼 이제 가야겠다. 형 쉬어요 나 가볼게.”
“웬일로 자고 간다는 소리를 안해?”
“형 바빠져서 나 못 놀아준다는 말 서운하다고 시위하는 거에요.”
“유치하게. 그럼 그냥 자고 가. 언제부터 그렇게 꼬박꼬박 집에 들어갔다고.”
“됐네요. 내일 발표 있어서 준비도 해야하고 나 이제 갈래요.”
“알았다, 들어가. 내일부터 나 집에 언제 올지 모르니까 무작정 오늘처럼 기다리지 마.”
“응, 안녕. 나 진짜 가요.”
“그래, 들어가. 잘 자고.”
“형도 잘 자요.”
이유없이 애틋한 인사를 나누고는 삐걱거리는 철제 대문을 닫았다. 벌써 캄캄한 어둠만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나는 비릿한 물 냄새. 내일은 비가 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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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오늘은 집에 안가? 웬일로 동방에 이 시간까지?”
“응. 어차피 가봤자 놀아줄 사람도 없어 이제.”
“왜? 그 형인가 하시는 분은?”
“윤기 형이 자기 바쁘다고 기다리지 말라고 하더라.”
“서운해서 안 가는 거구만?”
“아니거든?”
“아니기는. 너 그 형 좋아한지 한참 되지 않았냐?”
“...”
“서운한 거 맞네.”
“형도 나 좋아해.”
“알아.”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형이 바쁜 건 서운할 일이 아니었으니까. 교복 입은 민윤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사람의 평생의 소원은 그 구질구질하고 꿉꿉한 골목을 벗어나는 일임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나니까.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소소한 축하파티라도 열어줄 일이었다. 스타트업은 불안정한 일이니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내가 아는 형은 당연히 잘할 걸 알고 있었다. 뒤 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와중에도 높은 성적으로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비용 부담을 줄이려고 성적을 유지했다. 장학금으로는 도저히 충분한 돈을 모으기 힘들다면서 하루 한 두시간 겨우 눈 붙이면서까지 알바를 계속하는 윤기 형이 지금까지 모아둔 돈은 사실 골목을 나가기에 벅찰 만큼은 아니었다.
내가 막고 있었다. 형의 평생의 소원을. 유일한 꿈을.
서로 알고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정으로 포장한 사랑이란 감정을 고작 얼마가 될지 모르는 짧은 시간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우정 같은 사랑이라서, 사랑 같은 우정이라서. - 아니, 사실 뒷말은 틀렸다. - 아무튼 그런 감정을 연인이라 불리는 관계에 잠시 두었다가 혹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될까 봐서 입 밖으로 감히 고백하지 못했다.
학자금 대출하나 갚지 못하는 내 입장에서 형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짐이나 될지도. 그 낡고 낡은 골목에, 회색 빛 가득한 골목에 남은 집은 얼마 없었다.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본 적 없는 그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니고서는 언제부터 비어 있었는지도 모르는, 페인트 스프레이로 알 수 없는 그림이 여러 겹 덮여있는 회색 벽돌 담뿐이다. 그 골목에 이제 혼자 남는다라.
매번 골목을 나가고 싶다는 말을 하는 건 내 쪽이었지만, 실제로 노력하는 건 형이었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게 내 한계라고, 운명이라고 수긍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은 달랐다. 늘 자신을 탓하면서도 그 능력을 알았고 배경은 잘못이 없다면서도 그 한계를 알았다. 달랐다, 형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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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유가 좀 생겼다. 계획대로 흘러가던 사업은 운 좋게 타이밍 맞춰 뛰어올랐고 예정보다 빠른 시간에 나름 이름있는 중소기업으로 타이틀을 달았다. 한 달에 한 번 겨우 집에 들어갈 만큼 힘들었지만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타입이라 그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거라고는 연락 한 번 제대로 없는 박지민.
“왜 연락이 없어.”
“어, 형.”
“얼굴도 자주 못 보는 거 알면서 왜 연락을 안해, 서운하게.”
“형 바쁘잖아. 나도 바쁘기도 하고. 미안해요.”
“이건 사과 할 만해. 얼마나 서운했는데.”
“이상한 포인트에서 잘 삐지는 거 알아요 형?”
“너 같으면 아니겠냐? 박지민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서운하게.”
“미안해요. 밥은요?”
“안 먹었어. 너 데리고 가려고. 가자 밥 먹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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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어떻게 지냈어요?”
“바쁘게 지냈지. 일만 해서 사실 뭐라고 말해줄 것도 없어.”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봐 놓고. 치사해.”
“얼씨구? 박지민 유치한 건 여전하네.”
“유치하게 굴래요 그냥. 이제 형 얼마나 자주 볼지도 모르는데.”
“날 왜 자주 못 봐? 이제 여유 있다니까 그러네.”
“형 이제 이사 가야죠. 나갈 수 있잖아요 골목.”
“왜 당연히 내가 나갈 거라고 생각해?”
“처음 만난 날부터 안 바뀐 유일한 거잖아요.”
“지겨웠으니까. 그 골목 솔직히 이젠 더 이상 봐주기도 힘들만큼 지겨우니까.”
“그러니까요. 언제 나가려고요?”
“안 나가. 당분간은.”
“왜요?”
“너 데리고 나가려고.”
“내가 전에 이야기 했잖아요. 난 내가 직접 성공해서 나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그거 기다리기 싫어서. 박지민 그렇게 해서 언제 나올까 싶기도 하고.”
“나도 할 수 있어요. 형이 생각하는 것 보다 저 열심히 해요.”
“알아. 너 열심히 하는 거 누가 모른대?”
“그럼 왜요.”
“박지민이 옆에 없으니까 힘들어서?”
“나 놀려요?”
“이게 어떻게 놀리는 거야. 투정부리는 거지.”
“진짜 이유가 그거예요?”
“응. 진심이야. 그 좁은 집에서도 같이 지내던 사람인데 없으면 서운해서.”
“나 부담스러워요.”
“누가 다 대준대? 생활비는 나누는 거야.”
“...”
“진짜 너 데리고 가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나 좋으려고.”
“생각해 볼게요.”
“싫어? 표정이 싫어 보여서.”
“솔직히요? 싫어요.”
“왜. 너도 나가고 싶다고 했잖아.”
“네, 지금도 그 생각은 그대로예요.”
“그럼 뭐가 싫은 건데?”
“그냥요. 나도 모르겠어요.”
“좋아할 줄 알았어.”
“아뇨. 싫어요. 그냥, 좀 불편해요. 이것저것 다.”
“알았어. 마음대로 해. 기다릴 테니까.”
“식겠다. 밥부터 먹어요.”
그렇게까지 부담스럽게 생각할 줄은 몰랐다. 거절할 줄은 몰랐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다. 화라도 내 줬으면 사과라도 했을 텐데. – 이제 와서 후회하면 늦은 거겠지. – 그래서일까. 그 뒤로 지민이를 본 적이 없다. 먼저 안부를 묻기에는 내가 염치가 없어서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해봤을 텐데. 잠깐이라도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볼 걸 그랬다. 아니, 괜히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 걸. 그냥 네 말대로 먼저 기다리고 있을걸 그랬다. 얼마가 걸리든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민윤기는 여전히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가끔 저녁 무렵 하늘을 보다 보면 그 애 생각이 난다. 아직 너는 같은 자리에서 그때 그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겠지.
그 골목은 아직도 그다지 그립지는 않다. 다만 골목에서 보는 하늘, 가끔 갈라진 틈새로 자라던 이름 모를 풀꽃이 그리울 뿐이다. 함께 보던 하늘이, 함께 먹던 싸구려 라면이, 나눠 마시던 텁텁한 캔커피가 그리울 뿐이다. 아니, 그냥 박지민이 그리운 걸지도. 아니면 그 때의 우리가 그리운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