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백열등 아래 사각거리는 소리. 처음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보려 한다. 영문 모를 들쩍한 냄새가 나는 뜨뜻미지근한 이불 속 잠을 청하는 나와 다 써가는 노트를 지우는 너.
“노트 하나 새로 사 줄게.”
“됐어. 다시 쓸 수 있어.”
“그깟 노트 하나 못 사 줄까 봐.”
“못 사 주잖아. 노트.”
날 선 목소리와 삐걱대는 오래된 앉은뱅이책상. 맞다. 그날은 너와 내가 심하게 싸운 날이었다.
“...아직도 화 났어?”
“몰라.”
“미안해. 형이 이제 안 그럴게.”
아마도 네가 싫어하는 그 헌옷수거함에서 가져온 티셔츠를 버리라고 한 말을 듣지 않아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그 티셔츠. ‘LOVE SLEEP EAT’인가 뭔가 하는 뻔한 문구가 쓰여져 있던 그 티셔츠. 너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게 뭐냐고 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좋잖아. 사랑하고 잠자고 먹고.”
“...”
“뭐가 문젠데.”
사실 문제가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날따라 너의 공부가 잘 안 풀려서일 수도 있고. 헌옷수거함에서 가져왔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질려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날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두 평짜리 단칸방의 현실이 새삼스럽게, 생경하게 너를 옥죄어 올 수도 있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뭐?”
“사랑하고 잠자고 먹고.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냐고.”
괜히 이상한 논제로 들어갔다는 듯 아랫입술을 꾹 물고는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린 너였다. 굵은 글씨체로 쓰인 이름 세 글자. 박지민. 지워지지는 않았으나 닳고 또 닳아버린 마카의 선명함. 이제는 자국이라고 불러야 나을 것 같다. 박지민 세 글자가 거의 안 보이기 시작하니까.
“뭐 먹을래?”
“먹을 건 있어?”
“아까 마트에서 라면 사 왔어.”
“됐어. 또 라면…”
한숨. 그 끝에 목 매인 선득선득한 이 관계. 길바닥에서 상자 더미를 펴고 잘 용기가 없어서 서로의 몸을 붙들어 안았던 수많은 밤들. 칼을 들었던 순간, 한 꼬집만큼도 남지 않은 삶에 대한 미련에 기대어보려 했던 새벽들. 모두 세상의 구석 중에서도 가장 퀴퀴한 구석에 웅크려 베고 누웠던 지긋지긋한 순간들. 아, 정말 싫다. 하지만 걱정은 이르다. 최악의 기억들은 아직 까마득하게 머니까.
-
“퀵알바?”
“응. 마트 사장님이 소개해줬어. 오토바이 타면 할 수 있대.”
“으응…”
“몸 상할까 봐 그래?”
“오토바이 위험한 거 알잖아. 지난번에도….”
“걱정하지 마. 한두 번 타본 것도 아니고.”
그리고 몸 상하는 일 하는 게 별일이냐. 윤기가 이빨로 햇반 껍질을 벗기며 덧붙였다. 불안에 찬 지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형 조심해야 해. 지난번 마지막으로 오토바이를 탔을 때, 윤기의 어깨가 박살이 나는 탓에 한동안 일을 나가지 못했다. 상해나 운전자 보험 같은 것 따위가 있을 리 없었고 처음 받아온 항생제로 한 달을 버텨야 했다. 딱 한 번 간 병원인데도 치료비가 무지막지하게 나와 지민도 공부를 미루고 일을 나갔었다. 끅끅 울며 물로 배를 채웠다.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다. 그런 것도 기억이라고 부른다면.
“조심할게. 너한테 폐 안 끼치게.”
“...알았어.”
윤기가 낡은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문밖은 봄이다. 신물이 나게 유명한 가수의 신물이 나게 많이 들어본 봄노래가 저 너머 먹자골목 쪽에서 희미하게 울려 퍼진다. 씨발, 그래. 너네는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존나게 걸어라. 괜히 보이지도 않는 행복한 사람들에게 시비를 건 뒤 오토바이 헬멧을 집어쓴다. 부품이 될 시간이다.
-
“대학 사무실이요?”
“네.”
“아… 네. 뭐.”
퀵 회사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윤기에게 건조한 인사보다 더 거슬렸던 것은 첫 번째 목적지였다. 대학. 안 될 것도 없지. 전국에 대학이 몇 갠데.
“형… 나도 대학교 가고 싶어."”
...대학이 몇 갠데.
“물품이 뭔가요?”
“아 별거 아니고, 서류 봉투에요. 잘 할 수 있죠? 하사장님 믿고 뽑은 거예요.”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뿌르르르르릉. 오랜만에 거는 오토바이의 시동 소리가 시원하다. 형 조심해야 해. 귓전에 멍멍한 지민의 말에 윤기는 헬멧을 다시 한번고쳐 쓰고는 출발한다.
-
똑똑. ‘경제학부 김은수 교수`라쓰인나무 문을 두드린다. 김은수 교수… 어디 티브이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교수들 사무실은 얼마나 크려나. 비서 같은 것도 쓰나? 문이 덜컥 열리고, 윤기가 예상한 것과 달리 젊은 여자 하나가 윤기와 마주했다.
“무슨 일이세요?”
“...아. 김은수 교수 안 계십니까?”
“네. 제가 김은수예요. 말씀하세요.”
아, 여기 퀵… 윤기가 서류 봉투를 슬며시 내미니 여자가 받아서 들어살핀다. 여자랑 마지막으로 대화해 본 게 언제였더라. 아니, 그보다 오해한 걸로 사과해야 하나? 약간은 멍한 눈길로 여자를 바라보는 윤기다. 여자가 그 눈길을 눈치챘는지 살짝 웃는다.
“사인해야 하나요?”
“네? 아, 네… 여기…”
“괜찮아요. 이름 때문에 남자로 착각하는 사람 많으니까. 익숙해요.”
“네.”
“여기 학생이에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김은수 교수가 윤기를 훑어보며 말했다. 윤기는 그 눈빛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그때, 윤기는 알 수 없었다.
“아… 네. 저 그…”
정말 알 수 없었다.
“앞으로 자주 봐요. 남는 시간에 알바도 하고, 열심히 사네요.”
정말로, 지금까지도 윤기는 알 수가 없다.
“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도미노의 첫 블록은 세게 가격을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안녕히 계세요.”
그 끝을 예상 못 한다는 말은 아주 심한 거짓말이 되겠지.
-
...지민은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나가는 윤기를 한 번쯤은 따라가나가 어딜 가는지 쫓아가 봐도 되겠지. 하는 생각에 집을 나선 지민이다. 그런데 윤기가 향한 곳은 모텔이었다.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아니겠지 싶었다. 중국집 일 때문에 그릇 가지러 가는 거겠지. 윤기가 중국집을 그만둔 지가 오래인데도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세워 합리화를 해 보려 했다. 모텔 주인에게 아까 저 남자 어디로 들어갔느냐고 다그치듯 물었을 때, 모텔 주인의 흥미롭다는 눈길도 무시하고 2층 213호로 뛰어 들어갔다. 아니야.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거야. 내가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는 걸 거야. 그런데.
“형.”
“...지민아.”
자기밖에 없을 거라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윤기 친구예요?”
그 사람이, 황망하고도 엄청난 비약을 숨겨두고 있을 때.
“...설명해 봐.”
“윤기야, 누구야?”
“잠시만요. 저 얘기 좀 하고 올게요.”
지민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비약의 조각. 나갈 데도 없으면서 잠깐 나갔다 오겠다던 신난 발걸음. 난데없이 곱게 개어져 있던 새 티셔츠. 다 닳아서 너 주려고 산 거야, 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깨가 컸던, 백화점 쇼핑백에 담겨온 그 티셔츠. 그 티셔츠.
“뭐야, 지금 이 상황?”
“...”
“저 여자랑?”
“...”
“어디서 만났어?”
“...”
“뭐라도 변명을 좀 해 줘.”
변명을 좀 해 줘. 내가 지금 마음대로 생각 못 하게. 뭐라도 말을 좀 해 줘. 그건 협박이라기보다는 호소에 가까운 비명 같았다. 윤기가 목덜미를 긁었다. 그건 윤기가 불안할 때 나오던 행동이다.
“...내가 주승대 학생인 줄 알아.”
“뭐?”
“학생인 줄 안다고.”
“...어떻게? 형이 왜? 저 사람이 왜 형이 학생이라고 믿어? 왜?”
“저 사람, 주승대학교 교수야.”
“...아니라고 왜 말 안 했어?”
“...”
“민윤기.”
“...”
“형 너…. 저 사람한테 돈 받아?”
윤기가 지민의 눈을 피한다. 지민이 떨리는 눈으로 윤기를 훑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옷. 한 번도 차본 적 없던 시계. 한 번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윤기의 풍족한 모습. 풍족하지만 한없이 더러운 모습.
“그동안 퀵 간다면서 월급 받아온 거 이런 거였어?”
“지민아…”
“내가 언제 이런 돈 받아오면서 일하라고 했어?”
“...”
“저 사람 말고도 다른 사람 더 있어?”
“...”
“내가, 내가 언제…”
형이 이렇게 벌어오는 돈으로 살고 싶다고 했냐고. 지민이 목 끝까지 차오른 날 선 말을 삼켰다. 지금까지 먹은 것, 지금까지 입은 것, 지금까지 살아온 것 전부를 의심하는 절망적인 순간.
“...나 돈 많이 받아. 그 언제보다도 더.”
“...”
“그러니까… 그냥 있자. 응?”
“...”
“말 안 한 건 미안해.”
지민아! 부르는 윤기의 목소리에도 지민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 형의 몸을 갉아 먹듯이살아와야 했던 것일까. 모텔을 뛰쳐나와 공원 벤치에 앉는다. 왜. 왜. 소리를 지르며 마음껏 울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윤기를 마음껏 원망하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윤기가 지난 몇 달 동안 자신을 위해 일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원망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살 수도 없었다. 하필. 하필이면 대학교 교수야. 왜. 끊임없이 질문을 했지만, 대답을 해 줄 조물주는 가까이에 있지 않았다. 아니, 조물주는 이미 지민의 운명을 버린 지 오래인 것 같았다. 그 생각을 하고 난 뒤부터 지민은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복수할 수 없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지나가던 남자가 지민에게 물었다. 지민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저 괜찮아 보여요?”
“아… 아뇨…”
“저 안 괜찮아요.”
방금 내 세상을 잃었거든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다섯 살부터스무 살까지를. 전부 다 잃었어요.
-
윤기와 지민은 한 몸처럼 가까운 사이였다.
보육원에서도 죽 함께였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에서 쫓겨난 지민을 거두다시피 한 것도 윤기였다. 그때는 윤기가 식당에서 배달로 일하고 있을 때여서, 숙식은 해결할 수 있었다. 다만 지민을 데려온 것을 못마땅해하던 식당 주인이 이제는 배달 말고 요기요를 쓸 거라는 이유로 윤기를 쫓아내기는 했지만. 시발, 죽일 놈의 요기요. 윤기는 지민을 데리고 카페에 들어가 식당에 별점 하나짜리 리뷰를 마구 남겼다. 지민은 그런 윤기를 멀뚱히 쳐다보며 에어컨 냉기를 느꼈다. 그때가 마지막으로 둘이 같이 웃었던 때였다.
세상은 어린 둘에게 좀처럼 인자하지 않았다. 살 곳을 찾아야 했고, 마지막 순간에 10대 남성 변사체 둘로 발견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먹어야 했다. 지민은 대학교를 들어가고 싶어 했고, 공부할 책과 시간을 내는 건 모조리 윤기의 몫으로 돌아갔다. 윤기는 불평하지 않았다. 제힘으로 지민을 대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생각했다.
“형…”
지민이 3번째 수능을 망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윤기는 지민을 꼭 안았다. 추웠지. 미안해, 롱패딩 못 사줘서.
“나 또 망쳤어, 어떡해 형… 장학금은커녕 대학도 못 들어갈 거 같아…”
“괜찮아. 응. 괜찮아 정말로. 괜찮아.”
“나 그냥 대학 가지 말고 형이랑 같이 일할까…?”
“아니. 넌 대학 가야지. 난 무식하니까 이렇게 일하는 거고. 넌 똑똑하잖아.”
지민은 윤기의 품속에 풀썩 안겼다. 수능 날에는존나 춥다더니, 오늘도 춥네. 감기 걸리겠다. 보일러도 나오지 않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몸을 잘게 떨며. 그게 작년 일이었다.
“...”
지민은 이제 뭐가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냥 형의 그런 짓을 눈감아줘야 하나. 형이 그 일을 그만두면 생활비는 다시 반의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형은 두 명을 건사해야 했고, 지민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식충이 행세만 하고 있었으니, 길바닥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 무릎이 찢어질 듯 가난했지만, 깨끗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단칸방 장판 밑에 온통 퍼진 곰팡이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군데군데 검게 핀 것도 아니고, 모르는 새에 둘의 보금자리를, 지민과 윤기의 폐 속을, 관절 속을 온통 장악해버린 검푸른 질병.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었을 악취 가득한 비밀.
아. 아아. 이제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지민은 윤기가 준 티셔츠를 입고 주승대학교로 향했다.
-
“윤기야, 정말 그 친구 안 따라 가봐도 괜찮아? 많이 화나 있던데.”
“괜찮..아요.”
모텔에서 나온 김은수 교수와 윤기는 대학교 정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자 김은수 교수는 윤기의 어깨에 살짝 머리를 기댔다. 윤기가 어깨를 빼며 부정의 표시를 했다.
“왜? 아무도 없잖아.”
“그냥요.”
아까 지민의 얼굴을 보고 나니 이 사람과 뭘 해도 전부 범죄를 저지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민이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걸음은 조금씩 빨라져 어느새 대학교 정문에 도착한 둘이었다. 김은수 교수가 실눈을 뜨며 중앙도서관을 바라보더니 윤기에게 말했다.
“저거 네 친구 아니야?”
“네?”
“저기, 옥상에 있는 애.”
...안돼. 윤기의 머리에 순간 나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
지민아. 거기서 뭐 해.
나, 닦고 있어.
...
우리 둘 다 더러워졌잖아. 그동안.
…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잖아.
…
나는 그렇게 못 살겠어.
…
형은 계속 살아.
…
형은 살아남아야 해, 얼마나 더러워질지라도.
…
그게 내가 형한테 주는 아픔이야.
올해 벚꽃은 유난히 붉다. 얼마나 붉은지 관절과 폐와 심장까지 아려 온다. 사람들은 미친 듯 소리를 지른다. 중앙도서관 안에 있던 학생들이 창밖을 내려다보다 같이 소리를 지른다.
잘 가, 지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