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서 언급되는 모든 인물, 배경, 사건 등은 허구이며, 실존하지 않습니다.
*본 글의 주제인 구마 의식은 실제하는 의식이며 영화<검은 사제들>, 드라마<프리스트>의 구마 의식을 참고 하여 썼으며 의식에 사용한 기도문은 실제 구마 의식에서 사용되는 기도문임을 명시합니다.
*본 글에서 표현되는 부마자의 특징이나 신학대학, 그리고 사제와 부제, 학교의 사정 등의 설명은 많은 부분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되었으나 일부 글에 맞게 변경하거나 허구인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음욕 上.
“안 될 말입니다, 안형석 사제(Priest, 司祭 : 가톨릭 등에서 일정 품급의 자격을 구비하고 성사와 미사를 집행하는 성직자). 숙련된 부제(Deacon, 副祭 :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에서 사제 바로 아래에 있는 성직자) 도 하기 힘든 일에 지금 누굴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구마(Exorcism, 驅魔 :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마나 악의 세력을 쫓 아내는 행위)는 혼자 할 수 있답니까? 지금 구마를 할 수 있을 만한 자격이 되는 부제 자체가 없습니다. ”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 데려다 할 수 있는 게 구마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러다 다 죽는 겁니다.”
“어차피 죽습니다. 이번 구마를 하지 못하면 그 애는 영영 구하지 못할 거고, 앞으로의 부제도 전부 잃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몸을 잠식한 악마는 사람들을 하나씩 죽여가겠죠.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주교님.”
끄응, 앓는 소리가 나고 있었지만 그리하라는 허락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형석 또한 자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소리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주교를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한국 가톨릭 역사상 부마자(付魔者 : 육신에 마귀가 붙거나 귀신이 들린 사람)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아니, 부마자라 주장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부마자는 전혀 없었다. 아니, 전 세계적으로도 부마자라 일컬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의 도심에서 부마자가 나타난 것이다. 정신질환자도, 약물 중독자도 아닌 진짜 부마자가.
몇 달 전, 처음 교구(敎區 : 가톨릭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한 단위)에 보고된 후로 각종 의학적 검사와 다양한 검증을 거쳐 부마자임을 확인받은 이는 몇 달 동안의 구마 의식에도 불구하고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구마 의식을 위해 참여한 사제나 부제가 사고를 당해 죽거나 스스로 성직자의 길에서 물러났다. 정확히는 물러난 것이 아니라 도망쳤다는 표현이 더 맞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러 사제와 부제를 거쳐 얼마 전부터 부마자의 구마를 맡게 된 안형석 사제는 며칠 전 함께 하던 부제가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다른 부제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가톨릭으로부터 대한민국 구마 사제로 정식 등록된 이는 몇 없었고 그 몇 없는 이들이 전부 부마자를 거쳐 현재 안 사제에게 이르게 되었다. 또한 부제는 사제를 도와 다양한 의식과 여러 준비를 해야 함과 동시에 부제가 되기 위한 절차 또한 까다롭기 때문에 현재 남은 부제는 전무했다. 모두 성직자의 길을 떠났거나 그게 아니면 다쳤으니 말이다. 이 또한 부마자의 짓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좋소. 일단은 허락합니다만 로마 교황청에 연락을 넣을 것입니다. 구마 사제와 부제를 부탁드릴 테니 그
때까지만 버티세요, 안 사제.”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주교와 사제는 침묵했다.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공기는 그 어떤 때보다도 무거웠다. ***
예수 그리스도. 기도. 성당. 사제. 십자가.
이 모든 것은 윤기에게 태어날 때부터 곁에 있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써 천주교를 접한 윤기에게 사제가 되는 것은 일종의 사명과도 같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당에서 기도를 하며 자신도 반드시 커서 사제가 되겠다고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그리하여 지금 이렇게 졸업을 1년 앞둔 정식 부제로써 신학대학의 마지막 학년을 특별할 것도 없고, 특이하지도 않게 무난히 지내고 있었다. 그런 윤기의 앞에 지도교수가 갑자기 나타나 건넨 말은 평범한 부제로써 겪기엔 너무 특이한 말이었다.
“아, 민윤기 부제.”
“교수님.”
이름이 불린 윤기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네자 교수는 시간이 없다는 듯 윤기의 인사를 받지 않은 채 바로 본론을 꺼냈다.
“자네, 지금 학장님께 가 보게.”
“학장님이요?”
“급하게 찾으셨으니까 바로 가게나.”
무슨 일인가, 싶어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학장에게 불려갈 일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일반 적이지 않은 부름에 윤기는 어쩐지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그 주체를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 채 윤기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교수는 윤기의 대답을 듣자마자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윤기는 여전히 의문을 가진 채로 학장실로 향했다. 학장은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 하나가 쉬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연히 일반 학생이 학장실로 가는 일 또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독대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기도 했다. 윤기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제법 오랜 시간을 걸었다. 그리곤 복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학장실 앞에 섰다.
“............”
가슴 속에서 무언가 작은 불안이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고, 신학대학에 입학한 그 순간부터 세속적인 모든 것에 관심을 두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잡념이 많아지고 있었다. 너무 예상 못 한 일이 일어나서인지 윤기는 문 앞에서 선뜻 노크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곤 한참을 더 머뭇거리다 겨우 손을 올렸다. 왠지 이 문에 노크를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윤기는 자꾸만 차오르는 불안을 꾹 누르고서 기어이 노크했다.
똑똑-.
-들어와요.
허락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윤기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그리곤 부드럽게 문을 밀어 안으 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그를 반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민윤기 부제. 이리 앉으세요.”
“...실례하겠습니다.”
학장실엔 학장님 외에 누군가가 더 있었다. 사제복을 입고 있으니 그가 사제라는 것은 알겠지만 왜 자신이 학장실에 불려온 이 순간에 함께 있는 건지는 윤기도 파악할 수 없었다. 그저 궁금증을 꾹 누르고서 소파에 앉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윤기는 이 순간까지도 왠지 모르게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인사들 하지. 이쪽은 안형석 사제, 그리고 민윤기 부제일세.”
“처음 뵙겠습니다.”
학장의 소개에 아랫사람인 윤기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형석은 그런 윤기를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하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반갑네.”
짧은 인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윤기는 곧게 허리를 편 자세로 앉아 지금의 이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학장이 일반 학생을 학장실로 부른 데다 먼저 온 손님을 소개까지 한 상황이라면 자신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소개받은 사제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부제가 교수도 아닌 일반 사제를 소개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의문은 학장의 다음 말에 곧 더한 의문을 품게 했다.
“안형석 사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마 사제 중 한분이시네.”
“....구마 사제...말씀이십니까.”
구마 사제가 무엇인지 몰라 되물은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가톨릭 사제 중 정식으로 교황청에 인가받은 구마 사제가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가 신학대학에 나타난 것은 절대로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다. 거기다 졸업도 하지 않은 부제가 구마 사제를 소개받는 이런 일들은 더욱 더.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오늘 들은 이야기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 발설하면 안 되네, 민윤기 부제. 약속할 수 있겠나.”
학장의 물음에 윤기는 형석을 바라보았다. 지금 듣게 될 이야기가 무엇이든 그건 학장이 아닌 형석 때문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예, 약속하겠습니다.”
***
‘구마 의식의 부제를 맡아주게.’
학장과 안형석 사제로부터 들은 말을 요약하면 그랬다. 부마자. 악령에 씐 사람을 일컫는 말. 그러나 교황청 공식 기록으로도 최근 들어 부마자로 인증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 았던 때에는 정신질환자와 악령에 씐 자를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특히 의학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후로는 공식적인 부마자는 전무 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럽도, 미국도 아닌 좁은 땅덩어리인 서울 한복판에 부마자의 출현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학대학에서 그리고 성당에서 배우는 것 중에 당연히 구마에 관한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정말 동떨어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미지의 것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지, 윤기는 단 한 번도 자신이 경험할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마자가 나타났다는 것도 놀라운데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자신을 부제로 쓰려한다는 것이 오늘 이야기의 요지였다.
그들은 선택권을 준다고 했지만 사실 선택권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구마를 위해선 아주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조건에 부합되는 다른 부제가 있었더라면 분명 자신에게까지 차례가 오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것은 즉, 아직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는 부제를 데려다 써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다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공인받은 구마 의식 부제도 해내지 못한 일을 자신이 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 다. 대답은 곧 하라고 했지만 이미 거절의 명분은 사라진 채였다. 그래서 윤기는 구마 의식을 받아들이겠노라, 대답하고 학장실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자세한 상황에 대한 설명은 곧 해주겠다는 말과 함께 안형석 사제는 급하게 어디론가 가버렸다. 아마 교구로 갔으리라 짐작은 됐다. 윤기는 부마자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며 구마 의식에 대해 좀더 공부하고자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윤기는 사제를 꿈꾼 후 지난 몇 년 동안 관심 한 번 두지 않았던 구마 의식에 대해 상세히 찾아보고 또한 그 의식에서 부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살폈다. 그리고 안형석 사제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2주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배움의 장이 다 그렇듯, 적당히 소란스럽고 또 적당히 고요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윤기는 알려주지도 않은 제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나 받았다. 다짜고짜 건넨 안형석 사제라는 한 마디로 그를 소개할 다른 말은 필요치 않았다. 윤기는 인사를 건넸고 그는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오늘 점심시간에 학교로 갈 테니 식사를 함께 하자는 말이었다. 윤기는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고 그가 말한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안형석 사제가 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금방 도착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듯 다급한 얼굴을 하고서.
“안녕하십니까.”
“그래. 어, 편하게 해.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것 없어.”
“뛰어오셨습니까?”
“뭐. 일단 시켜놓고 얘길 하도록 하지.”
“예.”
두 사람은 적당한 메뉴를 시켰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은 국밥집에 왔으니 서로 다른 국밥을 하나씩 시키곤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윤기는 묘하게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컵에 물을 따르고 수저를 챙겨 안형석 사제 앞으로 내려놓았다. 그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듯했지만 눈빛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지 않았다.
“세례명이 뭔가.”
“미카엘입니다.”
“민윤기 미카엘 부제라...”
“.............”
미카엘이라는 윤기의 세례명을 여러 번 곱씹는 것처럼 보이던 형석이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고개를 들어 윤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더분한 겉모습과 달리 시선은 꽤나 날카로웠다.
“왜 그날 바로 구마 부제를 하겠다고 한 거지?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었는데.”
“.............”
전화해서 바로 본론을 꺼냈을 때처럼 형석은 속에 담아두지 않고 바로 물었다. 윤기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서 수저를 마저 내려놓은 뒤 팔을 가지런히 내려 허벅지 위에 살짝 올렸다. 그리곤 형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부제라고는 하지만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부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제가 거절했을 시에 별다른 대안이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구마 의식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극히 적고 분명 제가 그 적은 확률로 뽑힌 유일한 사람일 것 같았고요.”
“.............”
“이건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닐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제가 내놔야 할 대답은 하겠습니다, 하나였을 테니까.”
“...제법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있네.”
“감사합니다.”
“칭찬 아닌데.”
“.............”
윤기가 입을 꾹 다물었다. 형석이 윤기가 따라놓은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물을 마시곤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갈증이 일어 보였다.
“네가 한 말, 다 맞아. 너 아닌 대안이 없거든, 지금.”
“....그렇습니까.”
“그래서 나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건데 의식 자체엔 큰 기대를 하진 않아. 그러니까 네가 잘해줄 거라는 그런 기대 말이지.”
“..............”
자칫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에도 윤기는 동요하지도, 기색이 바뀌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형석의 말에서 딱히 비난의 의도가 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건 구마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부제가 제 몫을 거뜬하게 해내리라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당연한 말에 윤기가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었다. 형석도 그저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뿐이었다.
“이것만 명심하면 돼. 넌,”
“예.”
“내가 하라는 것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 그만하라는 것, 전부 내 말과 내 뜻에 따르기만 하면 돼.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이해했습니다.”
어차피 구마 사제가 지시하지 않는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구마는 신과 악마의 영역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과 방어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부제가 섣불리 손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윤기는 당연히 그의 말에 절대 복종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의사항은 절대 말을 섞지 마. 너한테 무슨 말을 하든 넌 기도문만 외면 돼. 아무것도 대답할 필요 없고 무슨 소리가 나도 돌아보지 말도록 해. 온갖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겠지만, 어차피 환각이고 환청 일 뿐이야. 거기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너,”
형석이 잠시 숨을 멈췄다. 그리곤 말했다.
“잡아먹히는 거야.”
형석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구마를 하는 사제라 그런지 그의 안광은 무서우리만치 형형했다.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하나라도 어기면 그 즉시, 악마에게 잡아먹히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잡아먹힌다는 것은 육체가 아닌 영혼임을 말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형석은 알겠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장 주문한 음식이 나와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끊겼다. 종업원이 국밥을 내려주고 가자 형석은 걸신이라도 들린 듯 뜨거운 국밥을 잘도 먹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윤기도 곧 식사를 시작했다. 몇 숟가락 정도 국밥을 떠먹었을 때 형석이 말을 다시 이었다.
“구마는 학교에서 하게 될 거다.”
“....예?”
형석을 앞에 두고 윤기는 처음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윤기는 자신이 잘 못 들은 건가 했다. 그러나 형석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밥 먹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당연한 말을 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다시...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뭘. 아, 학교에서 구마한다는 소리?”
“..............”
당황스럽게도 잘못들은 말이 아니었다. 윤기는 밥을 먹는 것도 잊은 채 형석을 바라보았다. 형석이 입 안 가득 국밥을 넣고서 우물우물 씹었다. 밥이 반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뒤 기다리던 윤기에게 답했다.
“말 그대로. 이번 구마는 학교에서 하기로 했어.”
“그게...가능한 겁니까? 대체로 구마는,”
“집에서 하지. 대부분은.”
“그런데 왜,”
부마자라는 것은 악마가 씐 상태를 뜻한다. 악마에 씐 사람은 말도, 행동거지도 정상인이 아니다. 정상인 처럼 행동할 수도, 말할 수도 없다. 배워본 적도 없는 외국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말한다던가,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던가, 그 외에도 일반 사람들에겐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이 부마자에겐 일어난다.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은 당연했고 부마자를 구마 하는 의식을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무도 모르게, 은밀한 곳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학교에서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윤기는 도저히 모르겠다는 얼굴로 형석을 바라보았다.
“첫째, 신학대학의 특성상 재학생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너를 학교 밖으로 불러내는 데에 한계가 있고 둘째, 이번 부마자 역시 너와 같은 대학 학생이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학교 학생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편입생이라더군.”
“...............”
첫 번째 이유는 윤기 역시 말을 얹을 수가 없었다. 신학대학 학생은 전원이 기숙사제를 시행한다. 규칙은 철저하게 지켜야 하며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시엔 패널티가 있고 그게 누적되다 보면 퇴교해야만 한다. 그렇다는 것은 사제가 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 규칙이란 것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구마를 할 때마다 기숙사를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이유에서 윤기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학생이라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꿈 같은 시기이다. 그 설레는 시간을 악마에 씐 채 지내야 한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고통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 이 학교에서 구마를 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기숙사 생활을 한다면 더욱 더 다른 이들로부터 떨어뜨려 놔야 하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럼 계속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 부마자는.”
“그렇긴 하지. 독채를 쓰고 있긴 하지만. 부마자인 걸 확인한 즉시 교구에서 요청해 대학교에 전했지. 다른 이들과 분리해 달라고.”
“그렇다 해도 집이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저 때문에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게 학교에서 구마를 할 이유가 될 순 없을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쓸데없이 똑똑해.”
“..............”
역시나 칭찬 아닌 칭찬이 흘러나왔다. 윤기는 흔들림 없이 형석을 바라보았다. 형석은 한숨을 내쉬고는 허리를 펴 윤기를 바라보았다. 국밥에서 손을 놓은 지는 이미 제법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번 부마자는 우리가 배운 특징들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말 그대로. 우리가 흔히 아는 부마자의 특징이 없어. 아예 새로운 모습들만 보여주거든.”
부마자의 일반적인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하게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배운 적도 없는 외국어를 능통하게 사용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특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윤기는 짐작 조차 되지 않았다. 부마자가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것들을 하는지를.
“대부분의 부마자가 악마에 깊이 잠식되면 될수록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과 달리 이번 부마자는 악마로부터 신체적인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듯해. 운신의 자유가 허락된다고 할지, 아니면 악마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고 할지, 아직은 파악 중이지만 말이야.”
“그럴 수가...있습니까? 악마에게 전혀 신체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건지....”
“그 인간의 본 모습이 매우 악마와 같든지 아니면 지금 악마가 우리가 알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종인지. 그것도 알아봐야지.”
“그럼 그게 왜 학교에서 구마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부마자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음에도 단 한 번도 이 대학을 벗어난 적이 없거든.”
“...............”
대부분의 부마자는 정신이 들었을 땐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곳을 찾는다. 보통은 가족이 있는 집. 그곳에서 모든 부마자들을 구마하는 이유였다. 한번 악마에 씌게 되면 스스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들 대부분 이 악마의 영향력에 지배당해 운신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그러니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그 순간에 향하는 곳은 자신이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집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부마자는 학교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낮엔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교우 관계도 매우 원만한 것으로 나타나고 성수나 기도문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마치 악마가 스스로 나간 것처럼.”
“................”
“헌데 밤이 되면 성수에도, 기도문에도 반응을 해. 이것만 해도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부마자와는 아주 다른데 이 부마자는 결정적인 게 하나 더 있어.”
“그게, 뭡니까.”
윤기가 저도 모르게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선 물었다. 형석은 마치 윤기를 관찰하고 살피듯 한참을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다른 사람의 특정한 감정만 건드리거든.”
“....예?”
“숨기고 싶은 것, 인식하지 못했던 것, 몰랐던 것들을 건드리는 놈이야.”
“하지만 그건....다른 부마자들의 특징과 별로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악마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정에 호소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단지 그뿐만이 아냐.”
윤기의 말을 끊어버린 형석이 깊게 눈을 감았다 뜨곤 한숨 쉬듯 말했다.
“타인의 성욕만을 건드려.”
“.....그, 그게 무슨....”
“악마에 의해 조종당한 사람들은 모두 파문당했다.”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 타인이라는 이들이 바로,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는 부제들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