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서 언급되는 모든 인물, 배경, 사건 등은 허구이며, 실존하지 않습니다.
*본 글의 주제인 구마 의식은 실제하는 의식이며 영화<검은 사제들>, 드라마<프리스트>의 구마 의식을 참고 하여 썼으며 의식에 사용한 기도문은 실제 구마 의식에서 사용되는 기도문임을 명시합니다.
*본 글에서 표현되는 부마자의 특징이나 신학대학, 그리고 사제와 부제, 학교의 사정 등의 설명은 많은 부분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되었으나 일부 글에 맞게 변경하거나 허구인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음욕 中.
구마를 위한 준비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과 다를 것 없는 믿음이 필요하고 구마 의식에 쓰이는 기도문들이 필요할 뿐이었다. 윤기는 마음을 다잡는 것 외에 따로 준비할 것이 없었다. 형석이 경고하듯 알려준 여러 주의사항을 여러 번 반복해 복기한 것이 그가 한 준비의 전부였다.
절대 말을 섞지 말 것. 무슨 일이 벌어져도 기도문만 욀 것. 어떠한 경우에도 부마자를 보지 말 것. 그리고 형석은 마지막에 하나를 덧붙였다. 어떤 이유라도 부마자를 혼자 만나지 말 것. 이 모든 경고들을 가슴에 깊이 새긴 채 윤기는 형석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형석에게서 구마 의식을 시작한다는 연락이 왔다.
바로, 오늘.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교수의 말에 강의실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지만, 윤기는 빠르게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가장 먼저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어디 가느냐는 물음이 들려왔지만, 대답도 않은 채 윤기는 형석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 향했다. 아직 캠퍼스에 사람이 많을 시간. 그 시간에 부마자는 자신이 머무는 기숙사 방으로 향한다고 했다. 매일, 어긋남 없이.
주중에는 매일 학교 시간표에 충실히, 낮에는 캠퍼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는 한 편, 마지막 강의 후엔 누구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곧장 기숙사로 간다는 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실제로 부마자의 그런 패턴은 꽤 오랜 시간 흔들림이 없었고 그 때문에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캠퍼스에서 무리 없이 구마 의식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여지껏 그 구마 의식을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윤기에게 부제로서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윤기는 머릿속으로 형석이 말한 주의사항과 그가 미리 준비해 두라고 했던 기도문들을 다시 점검했다. 어차피 부마자를 정면으로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고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은 머리에도, 가슴에도 새길 필요가 없는 말들이니 윤기는 오로지 기도문을 외는 것과 형석이 하라는 것만 하면 될 터였다. 지금까지 구마를 맡은 부제들이 다 구마를 실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부마자가 부제를 농락하는 방법이 간단치 않다는 것이기에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쉽진 않겠지만 윤기는 그저 기도문을 외는 녹음기 정도로 자신을 생각하리라 다짐을 하고서 한 번도 발을 들일 일 없었던 메인 캠퍼스 기숙사 건물로 향했다.
같은 대학이지만 신학대학의 학생이 타 학부생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신학대학의 특성상 학과 건물이며 기숙사가 다른 학부 건물과는 좀 떨어진 곳에 고립되듯 만들어진 탓이 컸다. 이 대학에는 메인 캠퍼스가 있고 그 외에 동과 서 캠퍼스가 따로 있는데 그중 윤기가 재학 중인 신학대학은 동 캠퍼스에 자리하고 있 었다. 동 캠퍼스가 서 캠퍼스보다 조금 더 고립되다시피 만들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20대의 젊은 남자들이 받는 유혹이 적어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신학대학 학생이 타 학과가 있는 캠퍼스 쪽으로 갈 일은 없었다. 그러니 윤기가 이렇듯 서 캠퍼스에 서 있는 것은 절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헐, 대박. 뭐야.”
“웬일이니. 쩐다, 진짜.”
여기저기서 윤기를 향해 시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로만칼라(Roman collar : 가톨릭 성직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로 목에 두르는 희고 빳빳한 깃을 말한다.)를 착용한 까만 셔츠와 까만 바지가 몸에 맞게 핏 되어 마치 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대낮의 환한 햇살에서 이 새까만 옷으로 휘감은 윤기의 주변만 이상하게도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성직자를 상대로 해서는 안 되는 상상들을 학생들은 윤기를 바라보며 떠올리고 있었다. 잘 채워진 셔츠의 단추, 그리고 성직자를 의미하는 하얀 로만 칼라가 역설적이게도 그를 매우 금욕적으로 보이게 했던 것이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윤기에게선 성직자의 안온하고 정적인 편안함보다는 채우지 못한 욕망, 금욕, 퇴폐 와 같은 묘한 분위기를 느끼며 학생들은 스스로의 시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볼을 붉혔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더군다나 순결을 서약하는 성직자를 상대로 떠올려서는 안 될 생각들이 자꾸만 떠오르니 자신의 인격과 도덕 수준을 되새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물론 이런 모든 시선들을 전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윤기는 오로지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해 끊임없이 걸었다. 그리고 도착한 부마자가 생활하는 기숙사는 빛의 기운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까악. 까악.
아직 해가 지지 않은 늦은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사방이 어둠에 싸인 것만 같은 착각과 함께 캠퍼스에서는 도통 볼 수도 없는 까마귀가 맹렬하게 울고 있었다. 윤기는 목에 닿아 있는 로만 칼라를 손가락으로 살짝 떨어뜨렸다. 넥타이처럼 목을 죄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목이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이 모든게 자신이 부마자의 영향 아래 들어왔다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아 순간 긴장이 되었다. 신학대학의 성적으로도, 부제로서의 평판으로도, 윤기는 앞으로 사제품(司祭品 : 신품 성사의 둘째 단계 품. 부제품이 일정한 과정을 마치면 소속 교구의 주교좌 대성당에서 신품 성사를 통하여 받는다.)을 받기에 더할 나위 없는 하느님의 종이었다. 그 어떤 수업에서도 해내지 못할까 봐 긴장한 적이 없던 윤기도 이번만큼 예외인 것 같았다.
지금 이곳에 있는 부마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악마가 빙의되어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직 악마에 대해서도, 부마자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이제 막 부제품을 받아 부제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자신도 이렇게 온 몸이 긴장을 할 만큼 강력한 영향을 느끼는데, 부마자는 그 악마에게 지배당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을 겪고 있으리란 거였다. 윤기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를 더 다짐했다.
반드시, 이 부마자를 구하겠노라고.
“일찍 왔군.”
“오셨습니까.”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윤기가 돌아보곤 인사했다. 형석은 전보다는 초췌해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시 구마를 하기 위해선 전보다 더 조사해야 할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고 했지만 그런 것치곤 얼굴이 밝진 않았다. 윤기는 오늘의 구마가 꽤 많이 힘들겠다고 직감했다.
“그런데 여기서 바로 진행하시는 겁니까. 아직 해도 지지 않았고 또 기숙사 안에도 학생들이 많을 텐데.”
“부마자가 묵고 있는 곳은 여기 꼭대기 층이고 아마 오늘 보면 알겠지만 일반 부마자의 특징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딱히 소리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그렇군요. 지금 바로 들어가는 겁니까.”
“그래야지. 원래 악마는 낮엔 힘을 못 쓰는데 기를 쓰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강의를 듣고 있으니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가 그때부터 자기 시작해. 그 틈에 구마를 내내 해왔던 거고.”
“..............”
그 구마가 모두 실패로 끝났음을 윤기는 다시 상기하지 않았다.
“내가 했던 말들 다 기억하고 있나?”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번 읊어 봐.”
형석은 주의사항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 점검이라도 하려는 듯한 얼굴이었다. 윤기는 망설이지 않고 기억 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절대 명령에 순명할 것. 하지 말라는 즉시 물러날 것. 부마자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말 것. 부마자를 보지 말 것.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단호하면서도 그 어떤 거짓도 들어있지 않은 담백한 목소리로 말하던 형석을 떠올리며 윤기는 마치 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담담히 대답했다.
“혼자 부마자를 찾아가지 말 것. 이상입니다.”
형석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기숙사로 향하며 말했다.
“구마 기도는 숙지했겠지?”
“숙지했습니다.”
형석을 뒤따르며 걷는 동안 기숙사 안에 있던 학생들이 두 사람을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사제의 등장에 대해선 추후 학장이나 총장이 알아서 해결해줄 터였다. 윤기는 손에 쥔 성경과 십자가를 다시 고쳐 쥐었다. 이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경계선에 스스로가 도착했음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너를 흔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그 어떤 유혹과 공격에도 흔들리지 마라. 모든 것은 환각과 환청이고 그 방을 나가는 순간 끝날 일들이다. 뭘 듣든, 뭘 보든, 마음에 담지 마라.”
“....알겠습니다.”
쉽진 않겠지만 윤기는 다시 한 번 형석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서 다짐했다. 그 어떤 유혹에도, 그리고 공격에도 굴복하지 않겠노라고. 반드시 그리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부마자를 구하겠노라고.
“여기다.”
어느새 부마자가 묵고 있는 기숙사 방에 도착한 형석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두려움은 없었지만 조금 지친 듯한 기색은 있었다. 몇 달째 내내 이어지는 구마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소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어깨를 짚고서 눈을 감아.”
“예?”
“어깨 잡고 눈 감아. 안으로 들어가서 부마자의 눈을 가릴 때까진 시선을 마주쳐선 안 되니 그런 거다.”
“아, 예. 알겠습니다.”
형석의 말에 윤기가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서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는 인간이 아닌 악령과의 만남 이며, 싸움이었다.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고 그래서는 안 되었다. 형석이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챙겨 온 물품들을 다시 한 번 고쳐 쥐고서 굳게 닫힌 문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잠겨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손잡이는 쉽게 돌아갔고 문은 금세 열렸다. 그리고 안은, 뼈가 시릴 정도로 한기가 가득 차 있었다.
“절대로 내가 눈을 뜨라고 하기 전까진 떠선 안 돼. 알았지.”
“예.”
“들어간다.”
“..............”
형석이 한 걸음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섰고 윤기 또한 그의 어깨를 생명줄처럼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윤기가 방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기숙사 방문이 저절로 닫혔다.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저도 모르게 눈을 뜰 뻔 했지만 윤기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형석이 아무런 말없이 손을 들어 제 어깨를 잡고 있는 윤기의 손을 부드럽게 건드렸고 그것이 어깨를 놔 달라는 신호라는 걸 깨달은 윤기가 손에서 힘을 뺐다. 형석이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고 무언가 부스럭거리며 준비하는 소리가 잇달아 들리더니 금세 커튼이 쳐지는 소리가 촤락 하고 들려왔다. 그리고 곧장 형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눈 떠도 된다.”
“....예.”
느릿하게 눈을 떠 바라본 곳은 평범한 방이었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이었지만 시야가 완전히 막혀 있진 않았다. 그다음으로 보인 것은 방을 둘로 나누고 있는 듯한 길다란 커튼 이었다. 형석이 준비한 것이 이것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둠 사이로 보이는 것들에 익숙해진 윤기는 그제야 이 모든 것이 악마의 농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밖은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였고 커튼 너머의 창에는 방을 어둡게 할 만큼 짙은 커튼 따위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툭-.
“뭘 멍하니 있어. 네 주변으로 한 번 더 둘러서 쳐.”
“.............”
커튼 아래로 던져진 것은 묵직한 주머니였다. 윤기는 그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부마자와 부제 사이에 쳐놓아야 하는 성염(구마의식에 쓰이는 소금)이었다. 허리를 숙여 주머니를 집어 든 윤기는 재빨리 주머니를 풀어 소금을 자신이 서 있는 주변으로 둥글게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을 둘로 나누듯 이미 성염이 길게 뿌려져 있는 것도 보였다. 그것은 악마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종의 결계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소금을 다 뿌린 윤기는 곧장 성경을 펼치고 머릿속으로 주님의 기도를 되짚기 시작했다. 그 사이 커튼 너머의 형석은 준비를 마쳤는지 윤기를 돌아보았다. 새하얀 커튼 너머로 형석의 모습이 그림자가 되어 비추고 있었다.
“성 미카엘 대천사 기도문부터 시작하지.”
짧게 뱉어진 한 마디에 윤기는 머릿속으로 외우고 있던 성 미카엘 대천사 기도문을 말로 내뱉기 위해 입 술을 벌렸다. 그 순간,
‘드디어, 왔네?’
소름 끼치는 아니, 그리운 아니, 사랑스러운 아니, 끔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소리가 아닌 무의식의 전달이었고 듣는 순간, 자신에게만 들리는 거라는 것을 윤기는 알 수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불분명했다. 십자가를 향했던 윤기의 시선이 곧장 커튼 너머의 부마자에게로 향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마치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뭐해. 시작하라니까.”
“아, 예. 시작하겠습니다.”
뼈가 시릴 정도로 한기가 드는 것과는 달리 몸은 전혀 떨리지 않았다. 이곳의 모순됨은 악마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윤기는 현혹되지 않으려 다시 한 번 자신을 다잡으면서 성 미카엘 대천사 기도문을 생각 했다.
“Sancte Michael Archangele defende nos in proelio.(성 미카엘 대천사님, 싸움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해주소서.)”
‘하나도 안 변했네. 그때랑 똑같아.’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사탄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목소리도 똑같고. 그런 소리 많이 듣지? 목소리 좋다는 소리.’
머릿속에 그대로 전해지는 목소리를 외면하기 위해 윤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처럼, 이것이 오랜 헤어짐에 이은 재회인 것처럼, 그 목소리는 반가움이 깃든 것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어차피 부제를 흔들기 위한 술수일 뿐인데도 윤기는 자꾸만 이 목소리를 처음 들으면서 느꼈던 온갖 감정 중에서 그리움이 짙어지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영대(領帶 : 성직자가 자신의 성무 집행의 표시로 목에 걸쳐 무릎까지 늘어지게 매는 좁고 긴 띠)를 부마자의 눈에 댄 형석이 악마에게 묻기 시작했다.
“짐승은 천주의 의지에 굴복하고 그 이름을 말하라.”
“으으, 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방안이 온통 악의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부마자를 죽이기 위한, 그의 삶의 의지를 꺾고 있던 순수한 악의에 윤기는 질식할 것만 같았다. 이 고통을 뚫고 시작된 의식에서 멀쩡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윤기의 머릿속에 직접 전달되는 목소리 하나였다.
‘나, 아파. 저거 그만 좀 하라고 해. 응?’
“esto præsidium.(저희의 보호자가 되소서.)”
이것이 악마인가. 성염에도 불구하고 악마가 전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꽂히는 것이 윤기를 두렵게 만들었다. 악마에게 부제의 존재를 들키지 않고자 두르는 것이 성염인데 이 악마는 마치 성염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는다는 듯, 윤기를 단번에 인식하고 있었다. 신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두려움은 윤기를 조금씩 잠식하기 시작했다.
“네가 불리는 이름이 무엇이냐.”
악마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한 형석의 목소리와 함께 부마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그 고통이 견딜만한 수준인 것인지, 아니면 그 정도의 고통은 아닌 것인지, 부마자는 소리를 지르거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 한 번 치지 않는 것 같았다. 형석의 움직임도 고요했고 부마자가 뒤척이는 듯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일반적인 부마자의 특징은 거의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았다. 그래서 성염 너머의 자신도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윤기는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사방은 어두웠지만 부마자의 형상은 또렷했다.
“Imperet illi Deus supplices deprecamur.(오, 하느님, 겸손되이 간청하오니 그를 감금하소서.)”
‘결국 들어줄 거면서. 넌 옛날부터 누구 말이든 다 들어줬잖아. 응?’
“Tuque, Princeps militiæ cælestis,(그리고 천상 군대의 영도자시여,)”
‘윤기 혀엉.’
“.....!!!....”
심장이 저 밑바닥 어딘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형, 혀엉. 윤기 혀엉!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 발악했던 목소리 하나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고 흐릿하던 과거가 순식간에 현재로 끌어올려졌다. 어쩌면 그것은 내내 이곳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헉, 허억-.”
“무슨 일이야. 뭐야!”
마치 누군가가 목을 꽉 조르는 것만 같았다. 간신히 숨을 내쉰 윤기가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커튼 너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끊긴 기도문에 놀란 형석이 윤기의 이름을 부르지는 못한 채 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계속하겠습니다.”
깊게 숨을 몰아쉰 윤기가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 안의 유일한 심연을 마주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윤기는 기도문을 이어 외는 것을 선택했다. 사제가 되기로 다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이것은 윤기에게 있어 언젠가 반드시 치러야 할 전투였다. 그것이 오늘, 이 순간이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잊고 외면하기로 독하게 마음먹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젠 희미해졌다고 느낀 그때가 여전히 진득하게 남아있을 줄은 윤기조차도 알 수 없었으니까.
“Satanam aliosque spiritus malignos,(사탄과 모든 마귀들,)”
‘계속 모른 척할 거야? 부제로 거기 서서,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겠다고?’
“qui ad perditionem animarum(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사제 될 자격도 없는 주제에.’
“.............”
오래된 기억이 스멀스멀 윤기를 옥죄고 있었다.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도와 헌신으로 스스로를 다져왔지만 그것은 근본의 문제요, 삶의 방향을 뒤흔드는 것이었기에 쉬이 잊을 수 없었으나 또한 필사적으로 잊어왔다. 다시금 그때를 들쑤시는 악마의 한 마디는 물음표보다 또 한 번의 외면을 종용하는 것만 같았다.
윤기는 도망치고 싶었다.
“천주의 이름으로 묻는다. 너의 이름을 말하라.”
“크읏, 윽, 으윽-.”
점점 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부마자의 억눌린 신음과 어떻게든 구마를 행하겠다는 형석의 단호함 이 동시에 들려왔다. 윤기는 그 고통 어린 호소와 악을 다스리려 애쓰는 참된 사명에서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그러나 또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악마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나는 다 알아.’
“Pervagantur in mundo,(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그들을,)”
기도문 사이에서 아주 잠깐 생각한 궁금증에 악마는 친절히 답하였다. 윤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온갖 방법으로 그를 유혹하고 공격할 것이라는 형석의 말대로 악마는 여지를 주지 않았다. 어떻게든 무너뜨리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었던 그날의 일을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악마는 윤기를 몰아 붙였다.
‘다 알아, 나는. 네가 궁금해하고 있는 모든 걸, 다.’
“divina virtute, in infernum detrude.(하느님의 힘으로 지옥으로 쫓아버리소서.)”
‘그 애가,’
“Amen.(아멘.)”
‘어떻게 됐는지도.’
악마의 그 말을 시작으로 윤기는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과거의 어느 날로 회귀하고 말았다.
***
“혀엉, 혀엉! 윤기 혀엉. 이거 봐. 진짜 멋있지?”
언제나, 늘, 형을 혀엉이라고 늘려 부르는 지민의 목소리에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돌아보니 평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모형 비행기를 보고 있었다. 지민의 꿈은 파일럿이었다.
“그러네. 진짜 멋있다. 이거 좋아해?”
“응. 좋아해.”
두근-.
또다. 또 가슴이 뛴다. 언제부턴가 느껴지는 증상에 윤기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매번 그러는 것도, 불특정 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전제조건은 늘 박지민이었으니까.
“윤기 혀엉은 비행기 안 좋아해?”
“좋아해, 형도.”
두근-.
또 두근거렸다. 왜 지민의 앞에서만 이렇게 불특정하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누구에게도, 심지어 하느님의 앞에서도, 이런 식으로 심장이 두근거린 적은 없었다. 오로지 지민에게만 해당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근거림이기도 했다. 윤기는 이 두근거림 의 정체를 알고 싶기도, 그렇지 않기도 했다.
“역시 우린 잘 통한다니까. 얼른 용돈 모아서 사야지. 나중에 나 파일럿 되면 꼭 내가 모는 비행기 타고 같이 여행 가자. 그럴 거지?”
“그래. 꼭 그러자.”
미래를 약속하는 지민의 모습을 보며 윤기는 설핏 웃었다. 어쩐지 그 미래가 매우 불투명할 것만 같은 느 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아암. 졸리다.”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모형 비행기를 한참이나 구경했던 지민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TV를 틀어놓고서 하품을 해댔다. 서로의 부모님이 모두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지민은 늘 윤기의 집에 와 숙제를 하거나 놀곤 했다. 당연히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제 집인 듯 들어오자마자 늘 입던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서 소파에 털썩 드러누웠다.
“졸리면 좀 자. 이따 깨워줄게.”
“그럼 나 한 시간만 잘게. 숙제해야 하니까 한 시간 있다가 꼭 깨워줘야 해.”
“그래. 그럴게.”
윤기를 전적으로 믿으며 지민은 금세 소파에서 잠에 빠졌다. 새근새근 숨소리가 금방 들려왔고 윤기는 의 미 없이 떠들어 대는 TV를 바로 껐다. 그리곤 오전에 읽다 만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지민의 숨소리가 마치 조용한 이곳에서 백색소음처럼 들리고 있었다.
평화롭고 나른한 오후는 늘 그랬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할 줄 알았다.
***
악마는 끈질겼다. 하느님 앞에서 그가 살던 지옥으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영혼에 새겨지는 엄청난 고통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슨 사명이라도 받은 듯 부마자의 몸을 놓아주지 않았다. 환한 오후가 저녁이 되고 다시 밤이 되어 어슴프레한 빛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새벽이 될 때까지도 악마는 지치지 않았다. 아니, 지친 영혼으로 기어코 부마자를 붙들고 늘어졌다. 소리 한 번 크게 지르지 않은 채 억눌린 신음을 흘리면서도 끝까지 놓지 않은 또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윤기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너는 그때도 그랬지. 지금처럼 곧고 바른 눈빛을 하고서 누구보다도 금욕적인 얼굴로 세상을 탐했어. 너는 모르겠지만 아니, 모르는 척하겠지만.’
“Domine, qui amas homines,(인간을 사랑하시는 주님,)”
‘하지만 나는 알아. 네가 얼마나 탐욕스러운 인간인지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사제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tende tuas potentes manus et tua altissima et robusta bracchia(전능하신 당신 손을 드높이시고, 강인한 당신 팔을 펼쳐 드시어)”
‘늘 부족했을 텐데. 삶의 전부가. 안 그래? 뭐가 하나 빠진 듯이. 네 삶이 아닌 것처럼 허전했겠지. 난 알아.’
자꾸만 떠오르는 과거의 어느 날을 억누르며 악마의 속삭임을 필사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했다. 그럴수록 악마는 머릿속을 온통 헤집으려는 듯이 노골적으로 그때의 민윤기를 불러댔다.
‘윤기 혀엉. 나 이거 진짜 좋아해. 혀엉은? 푸훕. 이거 기억나지? 이 날이잖아. 기억날 텐데.’
“et subvenii et visita hanc imaginem tuam, et mitte supra ipsam sangelum parcis, fortem et tutorem animae et corporis,영혼과 육신의 보호자인 평화와 힘의 천사를 보내시어, 당신의 모상인 이 종을 방문하시고 도우러 오소서.)”
털썩-.
하느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종으로서 간청했다. 나약하게 흔들리고 겁먹은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악마는 비웃을 뿐이다.
‘네 주인은 널 보호하지 못해. 왜냐면 네가 그걸 바라지 않거든. 너는, 마음 깊은 곳에 나를 품고 있다. 그걸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지.’
“quem depellet et fugabit quemcumque malam vim,(그리하여 모든 악의 힘이 도망치고)” 나는 하느님의 종이다. 나는 하느님의 보호 아래 있으며, 나는, 나는,
‘너는 나의 종이다. 그리될 것이다.’
“..............”
확신하듯 말하는 악마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형석의 명령이기도 했고 또한 윤기의 찰나의 망설임이기도 했다. 여전히 잊었다고 자부했던 그날의 기억을 들쑤시는 악마에게 스스로의 죄는 이미 하느님 께서 사하여 주셨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틈을 느낀 형석이 소리쳤다.
“기도문 계속해!”
“큭, 으윽, 윽.”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도 이 싸움의 승자는 악마였다. 윤기는 눈을 떴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새벽빛을 느끼며 커튼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방의 기도를 계속 외며 안형석 사제의 말 하나를 어기기로 했다. 그것은 악마를 향한 공격이자 스스로에 대한 방어이며 사제를 위한 도움이고 부마자를 위한 희생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et omne veneficium et maleficium corruptorum et invidiosorum hominum;(질투와 파괴를 일삼는 이들의 악의와 악행이 허물어지게 하소서.)”
머릿속으로 울리는 악마의 목소리에 직접 묻기 시작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너는 내 이름을 물을 자격이 없다. 그것을 잘 알지 않느냐.’
‘하느님의 종으로 묻는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사제도 아닌 것이 나서는구나. 그리한다고 해서 너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빛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당장 네 이름을 말하라.’
‘너는 나의 이름을 들을 수 없다. 어느 쪽도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다.’
부마자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고 있음을 부마자 스스로가 느끼고 악마도 인지하고 있었다. 형석은 더욱 더 부마자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자 했다. 그의 목소리가 윤기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주님, 당신의 포도밭을 황폐케하는 저 짐승을 공포에 떨게 하소서. 타락한 용에게 대항할 용기를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영혼과 육신의 보호자인 평화와 힘의 천사를 보내주시옵소서.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사탄의 악의와 간계에 대한 저희의 보호자가 되게 하소서!)”
“크으윽, 너희는, 으윽, 나의 이름을, 결코 알 수, 없, 크읏, 을 것이다, 으아아.”
“....빌어먹을!”
여명이 떠오른다. 이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방안에서 악마는 서서히 물러서기 시작했다. 아니, 무의식의 어딘가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구마 의식의 실패를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지만 형석은 마지막으로 물었 다.
“나는 하느님의 모상 아버지의 이름으로 말한다. 네가 불리는 이름을 말하거라.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그러나 빛을 감지한 악마는 더 이상의 소통은 거부한 채 오로지 윤기의 머릿속으로 목소리를 전달할 뿐 이었다. 악마는 마치 쉬러 가는 듯 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반드시 내게 올 것이다.’
“Ut cum gratitudine supplex tuus in tui tutela ac fide tibi caneat;그럼으로써 당신께 보호받는 종은 감사의 목소리를 높여)”
‘네가 지금 너로서 사는 모든 순간을 포기하고 너 자신을 버릴 것이다.’
“dominus es salvator mei et non timebo quid homus faciat mihi.(주님은 나의 목자, 내 그분과 함께하니, 그 누가 나를 해치리오.)”
‘그것이 네가 진정 원하던 너의 삶임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며,’
“Non timebo mala quia tu mecum es, tu es Deus mei, tu es fortituco mea, omnipotens Dominus mei, Dominus pacis, pater futurorum saeculorum.(나의 하느님이신 당신과 함께 있기에 두려워하지 않나이다. 나의 힘이시여, 전능하신 주님, 평화의 주님, 선조들과 미래의 주인이신 주님.)”
‘너는 나의 발아래 무릎 꿇고 애원하게 될 것이다.’
“Domine Deus Noster, miserere imaginem tuam et explica servum tuum(저희 주님이신 하느님, 당신 종을 굽어보시어)”
‘어린 날의 너의 치기는 이제 너의 욕망이 되어 네 영혼을 갉아먹고 있음을 너 또한 알고 있으리라.’
“ex omni damno aut minatione ab maleficio oriundo et serva et pone eum supra omne malum;(모든 악과 악으로부터 오는 협박으로부터 당신의 모상을 구하시며,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하소서.)”
‘너는 네 모든 걸 나에게 바쳐 물을 것이다. 답을 바랄 것이다.’
“Per intercessionem immaculatae semper Virginis Dei Genitricis Mariae,(지극히 거룩하고 영광 스러운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와)”
‘너의 욕망 때문에 그 애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splendentium Archangelorum et omnium Sanctorum.(빛을 발하는 대천사들과 모든 당신의 성인들의 이름으로 간구하나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의 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지어다.’
"Amen.(아멘.)"
“다음 구마는 이틀 후다.”
“....예.”
아침의 캠퍼스는 고요하면서도 또한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빛 속을 걸으며 윤기는 머릿속에 남은 온갖 잔상들을 떨치려 애를 쓰면서도 형석의 앞에선 표정을 유지했다.
“이틀 동안 십자가를 몸에서 떨어뜨리지 마라. 부제들이 모두 악마의 유혹에 이끌려 성범죄를 저지르고 파문당하거나 다른 사고를 당했으니 이번에도 다르지 않겠지. 파문당한 부제 모두가 두어 번의 구마 의식이 치러진 후에 그런 일을 벌였다. 그러니 반드시 내가 한 말을 기억해.”
“알겠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어. 오늘 하루는 쉴 수 있도록 학장님께서 조치해 주셨을 테니까.”
“..............”
지친 얼굴을 한 형석과는 달리 윤기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목에 걸린 십자가와 손에 쥔 십자가, 그리고 성경이 오늘만큼 무거웠던 적이 없었다. 아니,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던가. 사제의 길 앞에서 절망하고 또한 사제의 길을 걷겠노라, 굳건하게 다짐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윤기는 숨을 몰아쉬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한 과거가 들쑤셔진 현재는 온통 폐허로 변한 마음만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살아갈 모든 순간에서 그날을 영원히 잊지 못하리라.